[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여성 정치인의 옷차림에 집중했던 언론 보도 행태는 7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원피스 차림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비판받은 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언론은 또다시 여성 의원을 패션으로 소비하고 있다.

15일 국회 본회의장에 류호정 의원이 앞서 논란이 일었던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자 관련 기사만 15건이 넘게 나왔다. 중앙일보 <“국회 권위 떨어진다”던 빨간 원피스, 류호정 보란 듯 또 입었다>, 조선비즈 <“지금은 2020년”…보란 듯 ‘빨간 원피스’입고 국회 나타난 류호정>, 한국일보 <그 원피스 또 입은 류호정...‘굴하지 않는다’> 등이다.

17일 류 의원이 본회의장에 노란 원피스를 입고 나오자 2시간 만에 10여 개의 기사가 <노란 원피스 차림의 류호정>(뉴스1), <류호정, 오늘은 ‘노란 원피스’>(더팩트) 등의 제목으로 보도됐다.

17일 오후 5시 20분 경 네이버 검색창에 '류호정 원피스'를 치니 나오는 기사 화면

머니투데이는 17일 최근 가장 주목받는 여성 정치인들의 옷차림을 모아 기사화했다. <추미애·김현미·정은경처럼..가을女 패션 대세는 ‘바지정장’>이다. 기자는 남성의 슈트에서 영감받은 스타일인 ‘테일러드 룩’이 올 가을 유행이라며 여성 장관이 가장 많은 현 정부의 사회적 분위기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머니투데이는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사진을 나열했다. 이어 “사회 최고위층에 우먼파워를 드러내는 이들 여성 장관들은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슈트 패션을 선보이면서 젠더리스 슈트 셋업 스타일이 올가을 여성 패션의 선봉에 서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는 특정 패션 브랜드의 상품들을 연이어 소개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패션 브랜드 ‘10MONTH’가 올가을 슈트 라인업을 확대 출시했다”며 해당 업체 관계자 멘트, 판매하는 상품들을 소개했다. 삼성물산의 패스트패션 브랜드 에잇세컨즈의 스타일링 상품도 함께 다뤘다. 일종의 광고 기사인 셈이다.

머니투데이 <추미애·김현미·정은경처럼..가을女 패션 대세는 ‘바지정장’> 기사

앞서 언론이 여성 정치인을 패션으로 소비하는 보도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류호정 의원이 지난달 빨간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뒤 언론은 원피스와 관련해 과도한 양의 보도를 쏟아냈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는 지난 10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여성 정치인의 패션에 주목하는 보도는 남성의 정치영역에 들어온 여성 정치인들의 자격을 따져 묻는 ‘탈자격화’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여성 정치인들의 복장에 대한 지적은 고정적인 여성 혐오가 작용한 사례”라며 “단순 트래픽을 위해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탈자격화와 여성혐오 담론을 견인하고 유통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언론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13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는 류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등원한 일을 두고 일주일간 관련 기사가 717건 쏟아졌다고 짚었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언론의 100% 잘못”이라며 “쏟아진 기사의 특징은 쏟아질수록 더 많은 클릭 수가 유도된다는 것이다. 결국 언론이 이 장면을 통해 장사밖에 하지 않았나”라고 얘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중앙일보가 보도한 패션 관련 기사들

언론이 여성 정치인을 패션으로 소비하는 보도 행태는 10년 전에 머물러 있다.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전 대표 시절, 중앙일보는 대통령 특사 외교 일정을 소화하는 패션을 모아 <박근혜 ‘특사 패션’…“외국 정상에 대한 예의”> 기사를 썼다.

박 전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13년 1월 중앙일보는 <화사한 만다린 칼라…희망·위엄 강조한 ‘당선인 스타일>, 5월 조선일보는 <옷차림도 外交…평소보다 여성스럽고 화사하게>, 8월 중앙일보는 <박근혜 ‘컬러 정치’…패션으로 메시지 전달, 휴가지 편한 치마> 등의 기사를 작성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이미지 컨설팅 전문가들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패션에 ‘이미지 성적표’를 매겼다. 그해 9월에는 <맞춤형 ‘색깔외교’>라는 정치기사에서 해외 순방에 나선 박 전 대통령이 베트남 국빈만찬 때 녹색 월남치마를 입었고, 방중 만찬 때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황금색 한복을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당시 지나친 패션 보도에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양선희 논설위원은 2013년 9월 오피니언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그렇게 옷을 잘 입는가>에서 “언론은 옷 색깔 바뀔 때마다 의미를 짚어가며 보도 경쟁을 벌였다. 원래 여성 정치인들의 옷차림 기사는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과거 남성 영역이었던 정치무대에 들어온 여성들 자체가 눈길을 끄는 데다 똑같은 양복 차림의 남성들과는 달리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입는 여성 정치인의 경우 옷조차 신기해 보이기도 해서일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더라도 만무하는 대통령 패션 기사는 마치 스타의 옷차림에 열광하는 ‘팬덤 저널리즘’처럼 보여 불편하다. 개인적으론 지위 높은 사람들의 감동 없는 패션을 마치 뭐라도 있는 양 쓰는데 얼마나 고단한 직업인지 해봐서 알기에 쓰는 기자들도 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2014년 7월에도 양 위원은 오피니언 <박 대통령과 펑 여사의 패션대결?>에서 패션 보도를 지적했다. “펑 여사와 박 대통령 혹은 조윤선 정무수석의 패션대결. 일부 언론은 이런 주제로 열을 올렸다. 한데 나랏일에 바쁜 대통령과 정무수석이 왜 중국 퍼스트 레이디와 패션대결을 해야 하나”라며 “여성은 대통령이라도 옷 자랑이나 하고 남의 부인과 옷으로 경쟁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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