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미디어는 여성 정치인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최근 이례적인 주목을 받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원피스 논란은 언론이 여성 정치인을 '탈자격화' 시선에서 바라보고 소비한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9일 주최한 라운드테이블 ‘남성독점 정치에서의 여성혐오’에서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성혐오가 미디어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미디어에서 여성 정치인들은 주로 ‘신기함, 호기심’의 틀로 제시돼 여성과 정치 영역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전달되거나, 가정생활과 정치활동 사이에 갈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또한 여성 정치인의 성취는 지극히 개인적 성취에 한정지어 표현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1월 9일 방송된 MBN예능 <속풀이쇼 동치미> 365회에는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 김삼화·박주현 바른미래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등이 출연했다.

여성 정치인들에게는 가정에 대한 질문이 매번 등장했다. 남성 정치인과 달리 여성 정치인들은 “정치를 한다니 남편의 반응은 어떤가요?”, “자식들 밥은 누가 챙겨주나요” 등의 질문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1월 방송된 MBN예능 <속풀이쇼 동치미>가 지적됐다. 여성 국회의원들을 모아 ‘가족이 상전이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방송에서 주된 질문은 “가정에서 누가 권력을 잡아야 하냐” 등, 여성 의원들의 가정에서의 역할이 주로 다뤄졌다.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 언론인들이 여성 정치인을 ‘정치인’보다는 ‘여성’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 교수는 “정치인보다 여성에 집중하게 되면 사회적 여성성의 기준을 먼저 상상하게 돼 언론인이 스스로 성별 고정관념을 가지고 기사를 작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성 정치인에게 '1호', '최초' 타이틀을 붙이는 보도는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교수는 언론이 “드디어 남성 정치가 보완된다”는 식으로 여성 정치인의 탄생이 남성 정치 전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하거나, “이제 대한민국에도 최초 여성 국회의장이 나올 때가 됐다”며 개별 사례에 과도한 의미를 붙여 표현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성 정치인을 ‘특별한 존재’처럼 인식하게 만들고 한 개인의 성취로 묘사하게 되면, 여성 정치인이 한계에 부딪히게 됐을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경험에 한정지어 부당한 평가가 내려질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수아 교수는 미디어가 기본적으로 여성 정치인을 ‘탈자격화’ 시선으로 비춘다고 말했다. ‘탈자격화’란 정치를 남성의 영역으로 보고, 여성 정치인들의 자격을 따져 묻는 것이다. 업무 능력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지 못하면 행실, 말투, 표정, 복장 등 흠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비추는 것이다. 이번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빨간색 체크무늬 원피스’에 언론이 대대적으로 주목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원피스가 논란이 된 이후 완판됐다는 소식을 전한 보도들

지난 8월, 류호정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빨간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사진 한 장이 보도되자 인터넷상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언론은 일부 커뮤니티에 등장한 성희롱성 비난 댓글 등을 그대로 옮겨 기사화했다.

김 교수는 “여성 정치인들의 복장에 대한 지적은 고정적인 여성혐오가 작용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특히 “설렜??rdquo;는 댓글이 가장 황당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중장년층이 분명한 댓글 작성자들이 국회의원을 여성으로 보고 ‘설렜??rsquo;고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게 여성 혐오의 핵심 구조”라며 “여성을 성적대상으로만 인지하거나 (‘술집 여성’,‘BJ’,‘도우미’ 등) 특정한 자리에 있는 여성은 모욕해도 된다는 이중기준이 담긴 여성 혐오”라고 말했다.

류 의원 '원피스 완판' 보도 역시 혐오의 사례로 지적됐다. 김 교수는 “원피스 완판 보도는 셀럽을 따라 아무것도 따져보지 않고 구매하는 여성 소비자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작성된 기사”라고 비판했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논란을 키운 데는 언론의 책임이 컸다. 원피스 관련 기사 대부분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 중 자극적인 반응이 인용돼 기사화됐다. 김 교수는 “언론은 류 의원을 비판하기 위해 특정 댓글을 모아 중계했으면서도, 인용했으니 객관적이라는 ‘논란 저널리즘’ 방식이 문제를 크게 키운다”고 말했다.

그는 “혐오표현 연구에서도 어떤 특정 사이트에서 얘기가 나오는 건 두면 되지만, 혐오표현을 퍼뜨리고 논란을 키우는 언론의 중계를 문제로 보는데 중앙언론도 여기에 뛰어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9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라운드테이블에서 발제 중인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 교수는 “논란 저널리즘은 언론이 포털생태계에 맞춰 만들어진 현상으로, 단순 트래픽이 잘 나오기 때문에 논란을 만들어 계속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사들은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탈자격화와 여성혐오 담론을 견인하고 유통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언론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기자 개개인의 성인지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기자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커져야 하는데 각 회사에 젠더 데스크를 만들고, 이들에게 판단을 맡긴 채 기자는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여성의 시민권과 인식구조를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 기자 개인이 노력하지 않고서는 논란저널리즘의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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