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의 애국가죠. 출범식에 앞서 다 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겠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지난 30일 ‘공정방송 수호’를 기치로 내건 KBS 제2노조가 출범했다. 지난해 11월 강동순 방송위원,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등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대선 때 큰 일을 할 것”이라는 KBS 윤명식 전 심의위원의 말이 꼭 1년 만에 현실화된 셈이다.

▲ 지난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1층 시청자광장에서 열린 KBS '공정방송노조'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정은경
바로 이 자리에서 KBS ‘공정방송노조’ 조합원 등 참석자들은 상급단체인 공공연맹의 ‘지도’ 하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다. 물론 주먹도 불끈 쥐어 들어올린 채였다. 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민중가요로 분위기를 달궈놓은 상태였다.

이달 중순, 정보통신부의 MATV 규칙개정 반대집회에서는 케이블TV업계가 민중가요와 트로트를 섞어 불러 사람을 헷갈리게 하더니 이날 출범식에서는 참석자들의 면면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이주천 교수, 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 김주원 변호사, 대한민국방송지킴이국민연대 이순영 사무총장 등 조금 전까지 KBS 본관 앞 ‘편파방송종식 방송되찾기 국민대회’에서 “이 나라가 좌익에 넘어갔다”며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방송폭력 저지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던 사람들이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 '진보 좌파의 운동권 가요'가 울려퍼지고 있는 모양새가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저들'의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KBS 제2노조는 ‘공정방송 수호’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윤명식 공동위원장 스스로 ‘강동순 녹취록’ 파문을 일으킨 바로 그 술자리에서 “우리는 안에서 머리띠 두르고 조끼입고 머리 빡빡 깎고 ‘물러가라’ 이거는 못하고 언론플레이 하려는 것” “제가 노동조합 이름을 KBS 공정방송 노동조합이라고 지었다. 저희가 하는 소리는 공정방송 하자고 하는 얘기처럼 들릴 거 아니냐. 밖으로 나가면”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 KBS 시청자광장은 KBS 노동자들에게는 '민주광장'으로 불린다. 이날 민주광장은 제2노조 출범식 화환에 밀려 수난을 겪고 있었다. ⓒ정은경
90년대 후반 대학을 다녔던 기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서린 피비린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진정성을 포장하기 위해 민중가요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만큼은 참아내기 힘들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는 동안 주먹을 들어올리지 않는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과 이석연 변호사는 차라리 솔직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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