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의 자리는 이제 없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tvN은 이성민을 앞세운 <기억>을 준비했다. 이전 <응팔>과 <시그널>은 기존 드라마들과 상당히 다른 색깔을 보였다면 이번 <기억>은 장르적으로 매우 익숙한 형태이다. 당연히 클리셰가 많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보통의 드라마라면 금세 식상해질 함정이지만 <기억>은 좀 다를 것이다. 이성민, 김지수, 박진희 등 40대 배우들의 진국 연기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골든타임>에 이어 <미생>까지 이어진 이성민의 명품연기는 이번에도 또 기대 이상의 감동을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물연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김지수 또한 큰 기대를 갖기에 충분하다. 불현듯 치명적인 불행을 맞게 된 40대 가장의 옆에서 그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과 불안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이 드라마 <기억>은 잘나가던 변호사 박태석(이성민)이 갑자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면서 달라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잘나간다는 표현은 다른 말로 정직하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박태석은 정의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클라이언트를 위해 뭐든 다하는 변호사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변호사는 아니었다.

박태석도 시작은 정의로운 변호사를 꿈꿨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힘을 싣지 못한 정의는 공허할 뿐이다. 우연히 찾아온 대형로펌의 제의에 박태석은 힘이 있는 정의를 다짐하며 권력의 중심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송곳>의 명대사를 떠올려야 한다.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는 것”이다. 박태석도 그렇게 달라진 지위에 애초의 다짐은 <기억>조차 못하고 사는 속물변호사에 불과했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대형병원의 의료과실을 숨기기 위해 내부고발자로 나선 양심적인 의사를 협박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래도 자기는 자기 일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고향친구이자 신경외과 의사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박태석이 초기지만 알츠하이머라는 것이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순간에도 반성 없이 앞으로만 나가려던 박태석에게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이 불행은 결국 박태석을 변화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아픔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엔 대단히 거대한 권력과 마주하게 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드라마 <기억> 포스터 상단에 눈길이 가는 문장이 있다. ‘사라질수록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알츠하이머로 <기억>은 사라져가지만 대신 그가 변호사로서 보아야 했던 것들을 기억해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없이도 박태석이 초심을 찾았다면 좋았겠지만 인간은 자기가 선 곳의 풍경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포스터도 흥미롭다. 원톱 주연인 이성민의 얼굴이 아닌 뒤편의 김지수와 박진희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연히 이성민의 얼굴은 흐릿하다. 전체적인 구도는 참 평범하지만 원톱주연의 얼굴을 핀트를 나가게 한 의도는 드라마 주제를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보였다. 정의. 항상 법에 억압받는 정의를 위해 사라져가는 한 남자의 외로운 투쟁을 이성민은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를 해봐야겠다.

아, 그리고 <골든타임>에서 이성민과 아련한 케미를 선보였던 송선미도 이 드라마에 출연한다. 단지 이번에는 이성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적이 되는 입장인데, 아직도 <골든타임>의 그 아련함 때문인지 송선미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를 기대케 하는 결정적 이유는 작가 때문이다. <마왕>, <부활> 등 미스터리의 미답지인 한국에서 성공을 거둔 김지우 작가라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시그널>에 이은 또 한 번의 간절함. <기억>.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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