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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르형에게 “공장서 듣는 말 다 써오라” 해봤습니다[2주에 한번, 이주이야기] 이주노동자 한글교실의 인연… 형, 수고했어, 오늘도!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 승인 2015.03.02 09:11

때는 4년을 거슬러 올라가 2011년 겨울 동묘앞 근처에 위치한 이주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난 오로지 26년간 한국어를 사용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당하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이주노동자 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팔에서 온 서너 살 많았던 쿠마르형을 대상으로 한국어의 기억, 니은부터 가르쳐주고자 교과서를 펼쳤다.

그런데 왠걸! 예상외로 한국어를 술술 말하는 쿠마르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뒤로 매주 일요일마다 쿠마르형과 1:1 개인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다. 그해 봄엔가는 쿠마르형이 네팔에 잠깐 휴가를 다녀온 뒤 히말라야 산맥이 큼지막하게 박힌 반팔티셔츠를 스승의 날 선물이라고 건네줬다. 문제는 반팔인데 솜털이라 상당히 두꺼웠다. 네팔 고산지대에서나 입는 여름옷인가 싶어서 언젠가 네팔 갈 때 입기 위해서 고이 옷장에 모셔두고 있다. 그렇게 1년간 수업을 하면서 쿠마르형이 모르는 문법을 물어보면 항상 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냥 제가 하는 말을 자주 따라하다보면 알 수 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한글은 참 어려운 언어다. 일단 영어나 중국어 등 다른 언어와는 다르게 존댓말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또한 두음법칙, 모음조화니 하는 문법들은 10년간의 공교육을 받은 나에게는 들어는 봤으나 설명은 할 수 없는 참으로 애매한 개념들이었다. 그래서 난 과감하게 교재수업방식을 바꾸어 일주일 동안 공장에서 일하면서 듣는 이야기들을 들리는 대로 다 써오라는 숙제를 냈다.

그때부터 쿠마르형은 공장 아줌마가 은근슬쩍 엉덩이를 만지면서 던진 말, 작업반장이 성질부리면서 일을 빨리하라고 다그쳤던 말, 일이 끝나고 기숙사 TV에서 본 드라마에 나온 말 등을 노트에 써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건 분명 쿠마르형의 친구 이야기라고 강조하면서(보통 이런 경우 본인의 이야기일 경우가 상당히 높다) 문자 한 통을 보여준 것이었다.

“우리 사이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해요. 우리 다시 생각해봐요”

아… 이 문자를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한단 말인가! 계속 친구의 이야기라고 주장하면서 매일매일 술을 마시면서 슬퍼한다는 쿠마르형에게 난 수업 끝나고 막걸리나 한잔 하자고 했다. 동묘앞 황학동 풍물시장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전집에서 김치전 하나와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면서 쿠마르형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3년여 동안 연애를 못하던 내가 무슨 조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날씨 좋아지면 여의도에 꽃놀이 놀러가자는 격려 아닌 격려를 하면서 술자리를 정리했었다.

시간이 흘러 1년간 한글교실을 마친 후 난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게 되었고 언젠가 쿠마르형이 네팔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점점 형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잘 지내고 있어요? 쌤”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알고보니 쿠마르형은 다시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에 위치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냉동실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한달에 하루 쉬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만나자고 했다.

조만간 쿠마르형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평소에 상담하던 것처럼 형이 받아야 할 월급이 얼마이고 노동법을 뭘 위반했고 노동부에 진정하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등등의 이야기보다 그냥 고생했다고 막걸리 한 사발 사주고 싶은 마음이다. 젊은 청춘을 먼 타국땅에서 보내야만 했던 쿠마르형에게 어떤 한국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지 곱씹어 생각해봐도 마땅히 좋은 한국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땀흘려 일하는 형에게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구절 하나를 보냈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pjww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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