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현 논설위원, 이하 직함 생략)이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제목은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의 편집권에 대한 인식 연구>다. 그는 편집권의 개념과 신문의 경제적 위기가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을 짚으면서 광고주와 사주, 경영진이 편집권을 침해한 사례를 고백의 형태로 담았다. 10대 일간지 전·현직 편집국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이 논문을 보면 ‘언론’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편집권을 휘두르는지 알 수 있다.

이충재는 “신문 위기 시화로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은 이중적인 위치에 놓여있다”며 “일선 신문 제작 현장의 책임자인 동시에 경영 부문에서도 일정 정도의 역할을 주문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이 신문사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하나 “(편집국장은) 언론의 공적 기능 수행과 기업으로서의 이윤 추구라는 상반된 요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이충재의 ‘진단’이다. 그는 “최근 들어 한 일간지에서 영업적인 이유로 편집국장이 경질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은 그런 사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썼다.

편집권이라는 개념부터 보자. 이충재에 따르면, 한국에 이 개념이 들어온 시기는 1964년으로 당시 편집권 개념은 일본신문협회 규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편집권의 본래적 소유자는 그 신문의 자본주이고, 편집권의 실제적 행사자는 경영관리인(대체로 발행인·편집인) 및 그 위임을 받은 편집관리인(대체로 주필, 편집국장)이라고 규정했다”던 편집권 개념은 1987년 이후,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 싸움 이후 편집국 전체의 민주적 합의과정으로 확장됐다.

여전히 “편집권은 경영권의 일부”라는 인식이 있지만 언론의 자유, 언론의 공적 기능에 대한 담론이 생산되면서 ‘사주’에 쏠렸던 편집권 개념은 조금씩 변화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전후로 언론의 관심은 ‘생존’에 쏠렸다. 신문의 부수는 급감하기 시작했고, 10대 일간지의 경우 1997년 말 부채가 3조1천억 원에 이르렀다. IMF와 과도한 신문경쟁에 따른 경영악화로 “외부적으로는 광고주의 압력과 내부적으로는 경영진의 간섭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이충재의 분석이다.

이충재는 신문산업을 선도한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종합편성채널을 시작했고, 여러 신문사들이 콘텐츠 유료화를 시도했지만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신문들이 사업다각화가 벽에 부닥치면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이 광고수익 개발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신문 산업의 경우 광고 의존도 비율이 80%에 육박하는 기형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구독률 저하는 광고 의존도를 높인다. 일선 기자들의 자기검열과 사후검열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광고수익 극대화’라는 악순환에 빠진다. 일간지들이 한 달에도 수차례 내놓는 ○○경영 특집, 기업들의 사회공헌 기획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최근 온라인신문에 실리는 ‘네이티브 광고’도 광고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언론사가 주최하는 포럼과 심포지엄, 문화행사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문 지면은 ‘협찬’을 얻기 위한 창구가 된지 오래다.

이충재는 “문제는 특집기사와 각종 신문사 행사와 관련된 광고협찬에 편집국이 주도적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기업을 담당하는 산업부 경제부를 비롯해 문화부 사회부 체육부 등 편집국의 거의 모든 부서가 취재와 기사 작성뿐 아니라 협찬을 따내는 데 동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이 자사에 불리한 기사가 게재될 경우 거리낌 없이 신문사 경영진이나 편집국에 기사 축소나 삭제를 요구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 (사진=연합뉴스)

기업이 언론의 기사를 내리고, 언론이 기업과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은 ‘광고’다. 2000년대 이후에는 광고가 편집권을 흔드는 사례가 많다. 이충재는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하던 2012년 4월 ‘경영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시사저널> 사태 또한 ‘삼성’ 기사에서 시작했다. 매일경제에서는 일선 기자들에게 ‘영업목표’를 할당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향신문에서는 광고국이 ‘삼성’ 비판 글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사례도 있고, 한겨레는 삼성 비판 의견광고에 대한 게재가 이루어지지 않은 적도 있다. 온라인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기사를 찾는 일 또한 어렵지 않다.

기사 수정이든 삭제든, 기획기사든 결국 ‘편집권을 위임받은’ 편집국장 손을 거치게 돼 있다. 편집권이 사주나 편집인에 있다는 의견도 있고, 실제 편집권 행사 주체는 ‘부장단 회의’에 있다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편집권 행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편집국장’이다. 정치권력이나 기업이 편집권을 흔들 경우, 이 문제를 최종 판단하는 주체는 편집국장이다. 그래서 이충재는 10개 종합일간지 전·현직 편집국장 14명을 만나 이들이 인식하는 편집권 개념과 사주·광고주에 의한 편집권 침해 사례를 들었다.

이충재는 “주로 대기업을 위주로 한 광고주의 압력은 자사에 불리한 기사가 게재됐을 경우 내용과 제목의 수정을 바라거나 아예삭제를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며 “(자신이 인터뷰한) 편집국장들은 광고주 요청을 무시하기 어려우며, 가급적 어떤 식으로든 반영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광고주의 압력으로 기사 제목을 고치거나 단수를 조정하거나 해명을 충분히 넣어주는 것과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역할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게 이충재가 인터뷰한 편집국장들 이야기다.

논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기업으로부터 기사 조정을 요구하는 전화를 자주 받았다. 굉장한 부담감을 느꼈고 사실상 무시하기 어렵다. 담당 부서에 기업 쪽 얘기도 들어보도록 하고 반론과 주장을 다 넣어주라고 했다.” “기사를 빼거나 할 수는 없지만 제목 내지 단수 조정 정도는 해줬다.” “같은 내용의 기사라도 다른 신문과 비교해 크게 취급됐으면 (광고주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충재는 “광고주들 가운데 각 신문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삼성이었다”며 “광고와 협찬에서 신문들의 삼성 의존도가 워낙 높은 탓에 비판 기사를 발제하거나 쓰는 데 제약이 많고 삼성의 로비도 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는 “거의 모든 인터뷰 대상자들이 삼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고 기자들과의 갈등도 상당 부분이 삼성 기사와 관련돼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에 불리한 일이 생기면 사전에 쓰지 말아달라고 하거나 나간 경우는 빼달라는 요청이 왔다”는 증언부터, 초판에 실린 삼성 비판 기사를 고쳐 노동조합과 냉기류가 흐른 사연, 삼성 이건희가(家)와 CJ 쪽의 분쟁 당시 삼성 비판 기사를 실었더니 담당부장이 다음날 임의로 기사를 고쳐 편집국에서 난리가 난 사연까지 있었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출입구 중 하나. (사진=미디어스)

이충재는 “삼성은 조금만 기사라도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전화를 해 손질을 부탁했다고 전했다”며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토로하고 신문사에 대한 광고, 협찬 등의 지원액을 들먹이며 불만을 제기한다고 여러 편집국장들이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현대나 SK 등 다른 대기업들도 이런 사정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삼성의 경우 신문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편집국장들이 받아들이는 압력의 정도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컸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충재는 “신문의 편집권을 침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광고자본”이라고 결론지었다. “광고와 협찬을 따내기 위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업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져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는 편집국장도 있었고, “편집국장을 2년 하는 동안 몸이 아파 딱 하루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사이에도 광고주 관련 기사 처리문제로 시달렸다”는 국장도 있었다. 이충재는 이뿐만 아니라 연초에 사장과 함께 대기업을 돌며 광고와 협찬을 부탁하는 인사를 다닌다는 편집국장도 여럿 있었다고 전했다.

정론지의 길을 걷는다고 경영악화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충재는 편집국장들을 인터뷰한 결과 “신문이 어려울수록 저널리즘의 근본적 존재이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고 전했으나 해법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 퍼스트로 간다 해도 어차피 거기서도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이니 여전히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문사들의 유료화는 모두 실패했고 여전히 ‘뉴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업계의 절대다수가 “광고 의존도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물론 천편일률적인 콘텐츠 탓이 크다. 뉴스의 온라인 플랫폼인 네이버는 신문사들의 면별 보기를 ‘공짜’로 서비스한다.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음 ‘뉴스펀딩’도 결국 ‘공짜’로 유통된다. 날품팔이가 된 신문은 ‘단독’ 기사를 쏟아내지만 이 단어 또한 트래픽을 올리기 위한 마케팅 수단쯤이 됐다. 온라인 저널리즘, 나아가 언론과 저널리즘을 신뢰하는 수용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정부 지원 등 든든한 후원이 없는 언론이 생존할 길은 뭘까. 언론이 광고 의존도를 낮추고 ‘날품팔이’ 신세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꼭 교과서 같다. 특정 문제에 대한 독특하고 일관된 ‘관점’을 제시하고, 독특한 주제를 발굴해 독자들과 공유하고, 취재와 기사 작성 및 공유 방식에서 ‘오픈 저널리즘’ 등 여러 가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특정한 수용자 그룹을 자신의 독자로 삼고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특유의 관점으로 가공해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종합일간지 중 출입처 시스템과 신문쟁이의 관행을 ‘포기’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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