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세월호와 함께 언론도 침몰했다. 기자들은 해경 브리핑을 받아쓰기 바빴다. 그리고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무리하게 취재했다. 결국 기자들은 현장에서 쫓겨났다. 대다수 기자들은 ‘기레기’가 됐다.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국회 행진길에 뉴스타파 오마이뉴스 JTBC 팩트TV 한겨레 등 일부 매체의 취재요청만 받아들인 이유다.

기자들은 반성문을 썼다. 일부 기자들은 석고대죄했고, ‘반성’ 기사를 썼다. 생존자에 대한 선정적인 기사도 많이 줄었다. 많은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하다는 세월호 가족들의 입장을 대변했고, 특별법이 어그러지는 과정에서도 국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단식 중인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기사도 꾸준히 나왔다.

기자들의 반성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아시아경제노동조합(위원장 백종민) 공정보도위원회는 진도, 안산 현장을 취재한 기자 11명의 소회와 평가를 담은 세월호 보도 ‘백서’를 펴냈다. 기자들은 단순 현장 보도가 아닌 심층적 취재가 필요했고, 유가족의 절절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공보위는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지난 5일 아시아경제노동조합 공정보도위원회가 발간한 세월호 보도 백서.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장기자들의 소회를 보면, 아시아경제 또한 다른 언론사 같이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 해경 브리핑 받아쓰기’에 바빴다. 재난현장 취재가 처음인 B기자는 “기사 방향 등에 대한 지시가 전혀 없었고 보고할 창구도 마땅치 않았다”며 “대책위 브리핑 시간이 오전 10시라 브리핑에서 나온 내용을 받아쓰는 수준의 기사 밖에 작성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A기자는 “타 언론사는 부장·차장급을 주축으로 정치부와 사회부 등의 인력이 포함된 TF가 꾸려졌다고 들었다. (중략) 하지만 우린 TF구성은 물론 이러한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C기자는 진도 현장취재인력을 2~3명으로는 브리핑기사를 처리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었다며 유가족 곁을 지킨 기자가 없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E기자는 “‘취재 윤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았던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현장에서 물세례를 받고 돌조각에 맞으면서 ‘왜 저 사람들(실종자 가족)이 저렇게 분노했나’, ‘언론에 대한 신뢰가 저 정도로 추락한 이유가 뭐였나’ 고민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가 신뢰하는 팩트가 가진 한계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G기자는 “과도하게 감정을 이입해서도 안 되지만, 내가 어떤 곳에 있는지를 끝까지 기억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그런 접근 없이는 방송 생중계 화면을 보고 기사를 쓰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E기자는 “(타 매체처럼) 좀 더 심층적인 보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후속보도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기자들은 현장에서 “사람 그리고 진심. 인터뷰이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재난 보도에 대한 기본적인 룰과 현장취재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기자들은 “사고대책본부에서 발표하는 내용이 팩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도 깨닫고, “늘 의심하고 검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기자들은 대형사고 취재에 취약한 경제지의 약점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기자들은 회사가 사건 초기 과감하게 인원을 투입하지 못했고, 회사 차원의 취재 지원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사건취재 경험이 적은 주니어 기자들을 현장에 대거 투입한 것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른 언론사가 시행한 심리치료 등 후속조치가 없었다는 점도 아쉬워했다.

다만 기자들은 참사 초기 데스크가 현장의 판단을 중시해 ‘전원 구조’ 오보를 막은 점, 개인 신상과 사연에 집착하는 자극적인 보도를 강요하지 않은 점, 제한된 인력에 무리한 취재를 강요하지 않은 점, 속보처리를 잘한 점, 기민하게 현장으로 인력을 파견한 점, 경제지인데도 지면과 온라인에서 세월호 보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언론이 외부의 비판에 무뎌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이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며 “보도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라는 점에서 독려하고 격려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언론부터 반성하라’는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반성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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