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현재 일본처럼 가스 경쟁체제를 위해 가스공사의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2017년 가스 완전경쟁 체제를 목전에 둔 일본에는 가스 수입가격 인하 등 민간경쟁체제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민간가스사업자를 늘리면 일본 같이 공급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일본의 가정용 도시가스요금은 한국의 3배 수준이다. 지역 간 요금격차는 3.7배다. 일본 시민들은 비싼 요금 탓에 가스를 난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하면 등유난로와 코타츠(이불을 씌워 만든 일본식 전열 화로)를 집에 들이고 전기장판을 늘려야 할지 모른다.

사회공공연구원 송유나 연구위원은 최근 지난 4월 일본 경제산업성, 일본가스협회, 도쿄가스, 간사이전력 등을 돌며 일본의 가스산업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 <사유화의 반면교사, 일본 가스산업 분석과 시사점>를 내놨다. 그는 “일본은 한국과 정반대 정책노선을 걷고 있다”고 강조했다.

▲ 한국과 일본의 용도별 도시가스요금 비교. 송유나 연구위원 보고서에서 갈무리.

한국은 에너지 완전경쟁 일본이 부럽다

일본은 모든 에너지사업자의 완전경쟁체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전력은 2015년, 가스는 2017년 완전경쟁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전력과 가스 사업자가 상호 침투 중이다. 도쿄에 있는 전력회사가 오사카에 가스회사를, 오사카 전력회사가 도쿄에 가스회사를 만드는 추세다.

한국은 30여개 민간회사의 지역독점 구조이지만 일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보급과 요금 관련 권한이 있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가스가 공공재라는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에는 정부 개입도 없고, 할인제도도 전혀 없다.

한국은 ‘직수입 확대’를 추진 중이다. 시장에 있는 여러 가스, 전력 발전사업자들이 가스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수입계약을 맺는다면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게 정부 논리다. 정부는 가스공사의 도입원가도 절감될뿐더러 경쟁유발로 가스요금이 인하되고 독점의 비효율이 개선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송유나 연구위원은 이 정책이 지난 2004년 가스분할이 불가능해지자 시작됐고, 산업특성 상 도입과 도매를 나누기 어려운 까닭에 신규수요에 대한 민간참여를 허용하면서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전력에 민간자본을 대거 허용한 것처럼 가스 직수입 정책도 ‘민자허용’이라는 민영화 우회로라는 것.

▲ 가스산업 직수입 제도의 변천사. 송유나 연구위원 보고서에서 갈무리.

국내에서 경쟁하면 국제시장 가격이 낮아지나?

정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도입가격이 한국보다 낮아진 이유를 민간경쟁체제로 들었다. 그러나 송유나 연구위원은 “당시 천연가스 국제시장의 호조건이 있었고, 일본 민간기업들은 한국보다 좋은 조건으로 몇 건의 장기계약을 체결했으나 한국은 한 건도 체결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가스시장에 민간사업자가 들어오면서 가스공사에는 신규 계약이 허락되지 않았다. 반면 정부는 SK와 포스코에 계약을 허가했다. 이게 정부가 추진하는 가스산업 구조개편인데 결국 가스공사를 축소 또는 분할해 매각하려는 것이 골자다. 일단 민영화라는 그림을 그려놓고 그 조건을 만든 셈이다.

정부가 말한대로 민간사업자들이 가스를 직접 수입하는 것을 확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송유나 연구위원은 “경쟁의 결과는 전력회사의 완승, 일부 메이저 가스 회사의 반승, 영세한 기업들의 도산, 전력과 가스 서비스의 질 하락 및 요금 인상 등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 서울시 관악구 행운동에 공급되고 있는 도시가스. (사진=미디어스)

한국 직수입 정책의 결과, 일본에 있다

일본을 보자. 오사카는 오사카가스, 나고야는 토호가스가 지배한다. 자유화 정책은 민간독점을 강화했다. 일본 히토츠바시대학의 다케오 키카와 교수는 일본의 자유화 효과를 전력의 가스 잠식, 중소기업의 소비자 시장 참여, 지역 간 경쟁 격화, LP와 도시가스의 경쟁 시작 등 4가지로 설명했다.

다케오 교수는 자유화 정책으로 도시가스 지역이 줄 것이라며 “인구가 적은 곳은 향후 최소 공급이라는 개념도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은 LP 가스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봤다. 도시가스를 대신해 LP가 들어오겠지만 결국 LP가스 지역에서 공급중단과 포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1983년 한국이 가스공사를 설립해 천연가스를 다루기 백여 년 전에 일본은 가스를 수입했다. 그만큼 설비가 노후됐으나 1995년 시작된 자유화 정책은 가스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이 하루 2회 주배관을 순찰한다면 일본은 1회다. 한국의 도시가스 점검 주기는 6개월인데 일본은 40개월이다.

가스 자유화 정책을 경험한 일본은 최근 한국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일본은 최근 개별 기업의 경쟁적 구매를 극복하고 컨소시엄 형태로 구매하거나, 전력과 가스 회사 간 공동구매 등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가의 개입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 2011년 주요 발전회사 당기순이익 비교. 송유나 연구위원 보고서에서 갈무리.

오로지 한국만 ‘재벌 특혜’ 가스 정책 강화

한국만 재벌 특혜의 외길을 걷고 있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천연가스 도입원가는 일국 내 경쟁보다 국제시장 가격변동이 압도적으로 좌우한다”며 정부 논리를 반박했다. 그는 민간 직수입자들이 가스공사보다 저렴하게 가스를 들여온다더라도 사업자 이득으로만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기존 가스공사에서 가스를 공급받던 발전사업자가 빠져나가 직접 수입하게 된다면, 가스공사의 도매공급비용은 인상될 수 밖에 없다”며 “도시가스회사에서 가스를 공급받던 산업용 수요자가 빠져나가면 소매공급비용이 인상된다”고 설명했다. 직수입 확대가 요금인상을 부른다는 이야기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에너지 시장 중에서도 극히 특수한, 아시안 프리미엄이라는 반의적 핸디캡이 붙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내세운 직수입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는 현재 민간기업 3~5개, 발전자회사 5개뿐”이라며 “대기업만 특혜를 볼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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