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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싼 총리 붙잡은 정권, 한심한 권력의 ‘어깃장'복수의 신문 ‘어깃장’으로 해석, 보수언론도 '국무총리제 위기'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06.27 08:58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이란 결정과 그 결정이 내려진 과정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비상식적이란 것은 너무나 쉽게 설명된다. 크게 보아 세 가지 지점에서 그렇다. 

'정홍원 유임' 한심한 세 가지 이유

첫째, 정 총리의 유임은 국가가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진 유일한 책임인 ‘총리 사임’이란 결정을 뒤집었다. 이런 결정을 발표하면서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질 것인지라도 설명했다면 명분이 섰겠으나 그런 일도 없었다.
 
둘째, 정 총리의 유임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 ‘국가 대개조’의 약속에 어긋난다. 사실 한국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무총리야 별다른 권한도 없고 하는 일도 없는데 누구를 시키든 무슨 상관이냐고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 총리와 내각에게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발본색원할 수 있는 국가 대개조의 역할을 맡기겠다는 건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약속이었다. 그 기조에 따라 지난 두달 동안 총리 후보 두 명을 내밀어 놓고 그들이 낙마하자 ‘도로 정홍원’이 카드로 나왔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 27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셋째, 정 총리의 유임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고리 권력’에만 의존하는 ‘수첩 인사’를 타개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많은 언론들이 지적했듯 새누리당, 더 나아가 야당들까지 끌어들여 폭넓은 추천을 받는다면 청문회도 통과하고 실무능력을 발휘할 인사를 찾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자신들이 잘 아는 사람만 써야 한다는 기조를 정권이 포기할 수 없었기에 고작 두 명 낙마 이후 기존의 대안이 재검토된 것이다. 많은 언론들이 정 총리 유임 문제에서 박근혜 정부 인사 기조를 다시금 문제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 '어깃장' 동맹
 
27일자 신문 사설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각각의 방식으로 지적하였다. 그런데 정부가 한 일이 너무 ‘유치찬란’하다 여겼는지 비판에 동원된 어휘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무려 세 개 신문사 사설에서 ‘어깃장’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젊은 세대의 입말에서 잘 쓰이지 않는 ‘어깃장’이란 말은 ‘짐짓 어기대는 행동’을 나타내는 말로 여기서 ‘어기대다’는 ‘순순히 따르지 아니하고 못마땅한 말이나 행동으로 뻗대다’로 풀이된다. 정부의 행동이 얼마나 몰상식해 보였으면 이런 단어가 등장할까.
 
   
▲ 27일자 한겨레 1면 기사
 
<한겨레>는 <시키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개그라면 너무 황당한 개그고, 코미디라면 너무 슬픈 코미디”라고 개탄한 이후, “박 대통령은 심기일전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새 총리 후보자를 고르기는커녕 ‘정 그러면 예전 총리로 가버리겠다’고 어깃장을 놓아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사설은 “박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는 ‘인사는 내 고유권한인데 누가 뭐라고 할 거냐’는 오기가 가득 차 있다. 이미 보따리를 싼 총리를 유임시키는 대통령이나, 붙잡는다고 슬그머니 주저앉은 총리나 모두 염치없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역시 <정홍원 총리 유임… 말문이 막힌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다른 사건도 아니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총리를 재신임한, 헌정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상천외의 결정”이라 규정한 이후, “민의를 외면한 채 ‘경질 총리’를 유임시키는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라고 개탄했다. 진보언론들의 사설이라지만 매서운 비판이기 이전에 정권의 행동에 대한 탄식이 가득한 표현들이다. 
 
   
▲ 27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심지어는 중도언론인 <한국일보>의 사설에서도 ‘어깃장’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한국일보>는 <총리에 '책임'주고, 비서실장에 책임 물어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이를 검토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댓바람에 정 총리 유임 카드를 빼든 것은 오기나 오만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이래서는 국민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존중 받는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혹여 두 차례의 총리후보 낙마를 청문회 또는 야당과 언론 탓으로 돌리고 어깃장을 놓은 것이라면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이 정권이 의회와 국민을 상대로 ‘어깃장’을 놓는 ‘오기’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 이들 신문들의 진단 내지는 의구심인 것이다. 이것은 너무 나아간 비판일까. 보수언론들의 사설을 함께 보며 판단해 보자면, 그렇지도 않다. 사설들의 내용을 보건대 보수언론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보수정권의 행태를 너무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지지율 하락을 이끌어 내는 것이 그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기에 표현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언론도 '예의'와 '성의'없는 '시위'로 봤다
 
<조선일보>는 <정 총리 유임,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게 옳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청와대가 총리 교체를 비롯한 인사 쇄신을 통해 국정을 혁신하겠다는 약속을 내팽개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무엇보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총리 유임 사실을 발표하고 끝내는 것도 성의가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정 총리를 유임시킬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리다”라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예의’와 ‘성의’가 없다는 것이고, 이렇게 행동하면 ‘어깃장’ 놓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충고다.
 
   
▲ 27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중앙일보> 역시 <흔들리는 대통령 … 국정의 위기>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런 사정들은 명확한 것이었는데 대통령이 정 총리를 유임시킨 건 정치권과 사회에 대한 일종의 시위로 보여진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표현 역시 ‘개탄’이란 말에 어울린다. <중앙일보> 사설은 “국가개조의 중요성, 정권의 새로운 기운, 원칙의 실천, 인재발탁 능력의 입증은 중요하다. 대통령이 이런 것들을 미뤄놓고 항변과 시위에 매달리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런 비정상적인 결정이 내려질 정도로 정권 핵심부는 중심을 잃고 있다”라면서, 정치인 시절엔 그렇지 않았던 대통령이 “절제와 판단력을 상실하고 있다”라고 까지 썼다.
 
<동아일보> 사설이라고 대통령의 결정을 곱게 봐주지 않았다. <60일 만에 ‘도로 정홍원 총리’ 갈 길 멀고 험하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정홍원 총리의 유임은 “국민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다”라고 평가됐다. <동아일보> 사설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4개월 됐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나 민심은 레임덕에 빠진 정권 말기를 보는 듯하다. 총리 하나 뽑지 못하는 무기력 무소신 무책임의 ‘3무(無) 정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 27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이어서 <동아일보> 사설은 “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도 대통령은 마치 국민의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듯한 인사를 단행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이 역시 ‘개탄’이나 ‘한탄’이란 수사가 어울리는 수위의 표현이다. 결국 사실상 모든 신문들이 대통령의 총리 인선을 의회와 국민에 대한 ‘어깃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의 품격’을 그토록 욕하던 보수언론들의 입장이 참으로 딱하게 되었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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