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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수준이 아프리카? 공영방송이 '아프리카 언론' 수준[기자수첩]언론지표 점수만 깎아 먹었던 공영방송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05.16 14:43

“누가 글을 올린 것처럼 국민 수준이 그 정도 (...) (정부 관계자의) 무전기를 빼앗아 물에 뛰어들라고 할 수준이면 국민 수준이 아프리카 수준이다”

13일 <한겨레>가 보도한 김장겸 MBC 보도국장의 발언을 보면서 기자는 지난 4월 발표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아시아 언론지표(ANMB) : 2013년 한국 보고서>를 떠올렸다. 에버트 재단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유지에 따라 1925년 설립된 재단으로, 중도 진보 사민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 그들이 만든 아시아 언론 지표는 아시아 국가별 언론 환경에 대한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설명과 측정을 위해 고안된 체계로서, 언론 자유를 위한 국제 기준을 토대로 45개 지표에 따라 10인 이상의 자국 전문가들이 해당 국가의 언론 환경을 논의하고 무기명 투표에 따라 1~5점 사이의 점수를 매기는 정성평가다. 지표가 충족되지 않으면 1점을, 지표가 완전히 충족되면 5점을 주며 지표가 일정 부분 충족될 경우 상대평가를 통해 2~4점을 주는 식이다.
 
아시아 언론지표(ANMB) 2013년 한국 보고서가 보여주는 것은?
 
아시아 언론 지표(ANMB) 한국 패널 회의는 2013년 11월 22-24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그리고 기자는 회의에 참석한 12인의 패널 중 한 명이었다. 누가 무슨 발언을 했는지 공개할 수는 없지만, 회의의 분위기와 논의에 대해 상당 부분 기억하고 있다. 최종 결과물로 나온 보고서는 에버트 재단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링크).
 
회의에 참여한 나머지 전문가 패널 11인은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성곤 KBS 부장, 류춘렬 국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심효섭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강혁 변호사,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조선 부산일보 기획실장,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였다. 전체 진행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강명구 교수가 맡았고 회의 논의를 정리한 보고서 작성은 정준희 중앙대 강사가 담당했다. 주관적으로 패널 성향을 판단해 보면 보수가 4명, 중도에서 진보가 8명이었다.  
 
‘아시아 언론지표’는  원래는 아프리카 국가의 언론들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아프리카 언론지표(AMB)의 설계와 방법론을 아시아 조건에 맞춰 변형시킨 것이다. 아프리카 언론지표는 2005년부터 28개 국가에서 2~3년을 간격으로 두고 70회 이상 조사되었다. 아시아 언론지표는 2009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시작되어 태국(2010), 필리핀(2011), 파키스탄(2012), 몽골(2012), 인도(2012)에서 실시되었고 2013년에 한국에서 실시되었다. 
 
그래서 보고서 작업 전체를 지켜본 강명구 교수는 “보고서 의뢰를 처음 받고 아프리카나 몽골에서 진행된 작업을 우리가 해야 한단 점에서 좀 망설임도 있었지만, 한국 언론의 현실이 이 정도 수준이란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서구 사회의 시선에 한국 언론이 다른 제3세계 언론과 비슷한 평가의 대상으로 보이는 현실에 대한 언론학자의 자괴감이 깃든 발언이다.  
 
   
▲ 아시아 언론지표(ANMB) 2013년 한국 보고서 발표회
 
그러나 이 지표는 정성평가이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보다 수치가 낮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다. 회의에서 진보 성향의 한 패널은 “다른 지표조사를 봐도 오히려 선진국일수록, 또 언론자유가 증진된 시기에 평가가 박한 경우가 있다. 지표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해석의 기준이 깐깐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점수가 다른 제3세계 국가들보다 낮게 나올 것을 염려하고 점수를 잘 줄 필요가 없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보수 성향 패널들이 ‘애국심’으로 한국의 언론 자유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이 조사결과는 다른 나라와 점수를 비교할 필요가 없고 한국 사회의 언론이 어느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어느 부분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지를 해석하는데 유용하다. 
 
공영방송, 언론 선도하기는커녕 평균만 깎아먹었다
 
그렇지만 이 조사결과를 해석해 봐도 한국의 공영방송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수준’을 조롱할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의 문항은 네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영역은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의 보호, 증진 여부를 평가하였고 평균점수는 3.2점이었다. 제2영역은 언론환경의 다양성, 독립성, 지속가능성을 평가하였고 평균점수는 2.9점이었다. 제3영역은 방송 규제 투명성과 독립성, 공영방송의 수준을 다뤘는데 점수는 2.9점이었다. 제4영역은 언론의 전문성을 평가했는데 3.2점을 얻었다. 공영방송의 수준을 직접적으로 평가한 제3영역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축이었다.
 
보수·진보 패널을 아우른 평가에서, 공영방송은 한국 언론의 발전을 선도하기는커녕 평균점수를 까먹는 쪽이었다. 애초 에버트 재단은 최근 한국 사회의 이슈 쟁점을 보건대 제3영역의 패널 토의가 대단히 활발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의외로 제3영역에선 정치 성향 상관없이 대부분의 패널이 공영방송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속한 판단 및 평가가 이루어졌다. 
 
세부지표를 확인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제3영역의 세부 문항과 각 문항에 대해 패널들이 매긴 점수 평균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3.1 공공, 상업 및 지역 방송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방송 법규가 통과, 실행되었다. (3.7)
3.2. 방송은 독립적인 기관에 의해 규제 받으며, 간섭에 대해 법으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는다. 이 기관의 이사회는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해 공개적인 방법으로 임명되며, 특정 정당이 우세하지 않다. (2.3)
3.3 규제 당국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방송 서비스 및 인허가를 규제하고, 공평성과 사회 전반의 다양한 의견을 대변한다. (2.2)
3.4 국영/공영방송국은 사회 전반을 대표하며, 독립적이고 공개적이며 투명한 방법으로 선출된 이사회를 통해 대중에게 책임을 진다. (2.2)
3.5 국가 및 정당의 공식적인 직책을 가진 사람들 및 방송 산업에 대해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국영/공영방송국 이사회에서 제외된다. (3.3)
3.6 법이 정치적인 영향으로부터 국영/공영방송국의 편집 독립성을 보장하며, 실제로 보장된다. (2.1)
3.7 국영/공영방송국은 예산을 통한 임의적인 간섭과 상업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적절히 재정 지원을 받는다. (3.3)
3.8 국영/공영방송국은 전국 어디에서나 기술적으로 접근 가능하다. (4.8)
3.9 국영/공영방송국은 모든 이해관계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 형식을 제공한다. (4.0)
3.10 국영/공영방송국은 다양한 시각과 견해를 온전히 반영하기 위해, 뉴스 및 시사 관련 정보를 균형 있고, 공정하게 제공한다. (2.3)
3.11 국영/공영방송국은 경제적으로 가능한 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지역 콘텐츠를 제공한다. (2.6)
3.12 공동체 방송이 지역 사회의 주파수 접근권을 확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특별히 공동체 방송을 지원해 주는 장치가 있다. (1.9)
 
제3영역의 평균이 2.9점이라지만 편차가 있다. 방송법규(1항), 이사회 인선(5항), 적절한 재정 지원(7항), 기술적 접근성(8항), 다양한 프로그램 형식(9항) 등의 항목에서 각각 3.7점, 3.3점, 3.3점, 4.8점, 4.0점을 받아 평균을 끌어올렸다. 이 문항들은 5항 정도를 제외하면 방송 공정성 문제와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특히 다양한 프로그램 형식(9항) 문항의 경우 패널 논의 결과 “정치적 공정성 문제는 다른 문항에서 평가를 하니 그 문제는 빼고 순전히 형식적 측면에서만 생각하자”라는 합의를 통해 4.0점을 받게 되었다. 
 
   
▲ 안광한 새 MBC 사장의 첫 출근일인 지난 2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본사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언론노조 MBC본부집행부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세부적으로 살펴볼수록 더 심각한 지표
 
반면 방송 규제 기관의 독립성(2항), 규제 당국의 공평성과 다양성(3항), 공영방송의 대표성과 책임성(4항), 공영방송의 편집독립성(6항), 뉴스 및 시사보도의 균형성과 공정성(10항) 등 방송 공정성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지표들은 각각 2.3점, 2.2점. 2.1점, 2.1점, 2.3점으로 바닥을 기면서 평균을 끌어내리고 있다. 그 외 평균보다 낮은 문항이 두 개 더 있지만(!1항, 12항) 이것들이 방송 공정성 문제와 큰 관련은 없는 문항이란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그렇다면 방송 공정성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되는 6개 문항(2, 3, 4, 5, 6, 10항)만 따로 빼서 정밀분석해보면 어떨까? 이 6개항의 점수는 각각 2.3점, 2.2점. 2.1점, 3.3점, 2.1점, 2.3점으로 평균 점수는 2.4점에 채 미치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 국가는 지표를 단지 몇 가지만 충족시킨다(2점)”와 “이 국가는 지표를 어느 정도 충족시킨다(3점)” 사이에 있고 그나마 전자에 치우쳐있다. 
 
패널들의 점수 배정 분포까지 살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12명 패널의 6개항의 점수 분포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방송 규제 기관의 독립성(2항): 1점(2표), 2점(6표), 3점(3표), 4점(1표) 
규제 당국의 공평성과 다양성(3항): 1점(2표), 2점(6표), 3점(4표) 
공영방송의 대표성과 책임성(4항): 1점(1표), 2점(8표), 3점(3표) 
이사회 인선(5항): 2점(4표), 3점(3표), 4점(2표), 5점(3표)
공영방송의 편집독립성(6항): 1점(4표), 2점(3표), 3점(5표) 
뉴스 및 시사보도의 균형성과 공정성(10항): 1점(4표), 2점(2표), 3점(5표), 4점(1표)
 
보수성향 패널 4명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줬을 가능성을 염두에 보고 살펴보자. 규제기관의 문제를 다룬 2항과 3항에선 2점에 표가 집중되는 가운데 소수 의견이 양쪽으로 퍼져있다. 이사회 인선의 문제를 다룬 5항의 경우 2점에서 5점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퍼져있다.
 
공영방송, '아프리카' 운운할 자격없다
 
그러나 공영방송 자체의 질적 측면을 다룬 4항과 6항과 10항을 보자. 대표성과 책임성 문제(4항)에선 2점에 몰표(8표)가 몰린 가운데 1점(1표)과 3점(3표)으로 퍼져 있다. 대체적인 합의가 2점에서 형성되었고 보수성향 패널 중에서도 일부가 이탈했다. 
 
   
▲ 길환영 KBS 사장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김시곤 보도국장 세월호 발언 논란과 관련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서 편집독립성 문제(6항)로 넘어가면 일종의 양극화가 일어난다. 1점(4표)과 3점(5표)에 양극점이 형성되어 있고 중도적 의견인 2점(3표)이 외려 적다. 분포가 1점에서 3점이란 것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닌데 그조차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양극화된 판단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스 및 시사보도의 균형성과 공정성 문제(10항)으로 넘어가면 좀더 격렬한 양극화된 판단이 드러난다. 1점(4표)과 3점(5표)이 격렬히 대립하는 가운데 2점(2표)의 층이 얇고 4점에 표를 준 이조차 있다(1표). 
 
편집독립성 문제와 뉴스 및 시사보도의 균형성과 공정성 문제에서 패널의 1/3이 “이 국가는 지표를 충족시키지 않는다”라는 쪽(1점)에 기표한 상황은 한국의 공영방송이 그 규모와 제도에 비해 내실은 부실하고 허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수준이 아프리카 수준”이란 발언이 보여주는 천박함은 <아시아 언론지표(ANMB) : 2013년 한국 보고서> 패널들의 평가가 과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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