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앵커를 하다가도 바로 청와대 대변인이 되는 언론인이 있는 현실”에서 지난 2~3년간 한국 언론 환경에 대해 언론계 전문가 집단은 ‘부정적 변화가 작용한 측면이 더 크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극단적인 이념 대치 현상’, ‘종편 출범 이후의 과도한 편향성과 선정성’, ‘언론사의 경제적 압박’, ‘민영과 공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지배구조 문제’, ‘SNS와 같은 신규 미디어에 대한 억압’ 등을 꼽았다.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하 에버트 재단)은 3일 아시아 미디어 지형에 관한 국가별 자체 평가의 일환으로 진행한 <아시아 언론지표(ANMB) : 2013년 한국 보고서>(이하 ‘언론지표 한국 보고서’)를 발표했다. 아시아 언론 지표는 ‘아시아 국가별 언론 환경에 대한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설명과 측정을 위해 고안된 체계’로 ‘언론 자유를 위한 국제 기준을 토대로 45개 지표에 따라 10인 이상의 전문가들이 해당 국가의 언론 환경을 논의하고 무기명 투표에 따라 1~5점 사이의 점수를 매긴 것’이다. 지표가 충족되지 않으면 1점이고, 지표가 충족되면 최고점은 5점인 방식이다.

▲ 아시아 언론지표(ANMB) 2013년 한국 보고서 발표회

‘언론지표 한국 보고서’ 작성에 참가한 전문가 패널은 ‘강성곤 KBS 부장, 류춘렬 국민대 교수, 박경신 고려대 교수, 심효섭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강혁 변호사,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장덕진 서울대 교수, 조선 부산일보 기획실장,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등 11명이었고 강명구 서울대 교수가 전체 진행을 맡았고, 정준희 중앙대 강사가 보고서 작성을 담당했다.

‘언론지표 한국보고서’는 언론 영역을 4개로 나눴다. 각각의 영역은 ‘△제1영역 :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 보호 △제2영역 : 언론 환경의 다양성, 독립성, 지속 가능성, △제3영역 : 방송 규제와 공영방송의 투명성, 독립성, 공공성, △제4영역 : 언론 윤리의 실천 수준’이다. 이 가운데 1영역과 4영역은 3.2점의 평균점을 얻었지만, 2영역과 3영역의 경우 2.9점의 평균점을 얻어 상대적으로 취약한 영역으로 평가됐다.

제2영역(언론 환경의 다양성, 독립성, 지속 가능성) 가운데서는 ‘미디어 집중과 독점 방지’와 ‘사회 내 다양성의 공평한 반영’이 특히 취약하다는 응답을 받았다. 패널로 참여한 전문가들은 “미디어 집중에 대한 정부의 주목 정도는 그리 높지 않다”고 지적했고, “좌우 이념을 막론하고 언론 일반이 강한 진영 논리에 휘말려 편파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패널들은 종편 출범에 따른 편향성에 대해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의 신문사들이 공히 보수적인 견해를 견지하기 때문에 이들 각각의 점유율이 아니라 전체 점유율을 고려해야 하지만 법규가 충분하지 않다”는 다수 견해를 밝혔고, “쌍용차 등 특정 사안의 경우 아예 언론 보도조차 없는 현상” 등을 주요한 문제 사례로 꼽았다.

▲ 아시아 언론지표(ANMB) 2013년 한국 보고서 발표회

제 3영역(방송 규제와 공영방송의 투명성, 독립성, 공공성) 역시 ‘낙하산 사장’들이 장악한 이후의 공영방송 문제와 ‘특혜 체제’로 출범한 종편 채널들의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전문가 패널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방송 서비스 및 인허가를 규제하고, 공평성과 사회 전반의 다양한 의견을 대변한다’는 항목에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물론 박근혜 정부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정치권력의 핵심과 지나치게 가까운 인사로 선임했다”고 비판하며 “규제 당국 운영이 강한 정파성을 띄고 있어 공평성을 제한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투명성에 대해서도 “한국 공영방송사의 지배구조가 정치적 다수파의 선호에 따라 형성되고, 다수파의 견해에 기초하여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지적되며, 공영방송들이 “대중들의 목소리가 아닌 선임권을 가진 정당이나 권력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비판됐다. 이에 대한 법이 공영 방송의 편집 독립성을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도 전문가들은 “공영방송의 편집 독립성을 보장하는 별도의 법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종사자들이 정치적 외압에 따른 결정에 항의하면 징계”되는 현실이 지적됐다.

‘언론지표 한국보고서’ 작업 전체를 코디한 강명구 교수는 “보고서 의뢰를 처음 받고 아프리카나 몽골에서 진행된 작업을 우리가 해야 한단 점에서 좀 망설임도 있었지만, 한국 언론의 현실이 이 정도 수준이란 생각을 했다”며 보고서 작성을 위한 전문가 패널 논의를 통해 “‘이념과 가치 지향에 대한 관용의 부족’, ‘언론 자유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 증가’ 등에 대해서는 공감을 이뤘고, 한국 사회의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떠받치는 법제도적 장치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있지만, 기구와 제도의 실질적 운영 측면에서는 상당히 미흡한 상태에 있다는데 대체로 동의했다”고 말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역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한국의 언론 현실은 OECD가입국가 수준이 아닌 이 보고서를 주로 작성하는 아프리카 수준인 것들이 많았다”며 “언론 관련 법제도적 존재와는 달리 언론의 실제 상황, 위상과 현실은 격차가 많이 났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 작업을 진행한 에버트 재단 크리스토프 폴만 소장은 “외국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지난 2~3년간 한국의 언론 상황은 매우 안타깝다”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몇몇 미디어 기업이 우세하고, 인터넷 미디어에 대한 제약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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