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교육부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선택이 되었다가 철회된 맥락에 ‘외압’이 있다고 발표했고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로의 회귀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 등 시민사회가 반발했다는 것을 ‘외압’이라 표현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갖가지 종류의 연대투쟁에 대해 나오는 ‘외부세력’론의 또 하나의 변형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와 보수언론의 여론전 수준을 넘어 정부 기관의 조사에서 직접 절차적인 문제가 있음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좀 더 황당한 문제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한국 정부가 일본의 교과서왜곡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 될 것이다.
물론 교과서 선정과정에서 학교 측과 역사교사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다. 문제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측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 교과서를 선택하는 학교들이 이러한 자율성에 입각한 선택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들의 판단으로는 뉴라이트 진영이 지난 십여년 간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 내려고 한 것 자체가 일종의 역사전쟁을 빌미로 한 정치투쟁의 일환일 것이고, 대중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 교과서가 교육부의 권장과 보수적 학교장들의 외압에 의해서 이만큼이라도 채택 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와 교학사 교과서 옹호자들은 교과서에 항의하는 것 자체를 정치투쟁으로 규정을 하고 비판하니 반대론자들의 시각으로는 적반하장인 셈이다.
▲ 9일자 한겨레 1면 기사
결국 정권과 뉴라이트, 그리고 교학사 교과서 제작진 자체가 정치투쟁을 전개한 것이고 그것이 일단은 패배로 끝났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비록 뉴라이트 측이 그들이 비판하는 ‘민족주의자’들에게 제기한 논점들 중 일부가 긍정할 부분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비판하는 ‘좌파 민족주의’ 사관이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흐름인 이유는 좌파들의 여론조작이나 세뇌 때문이 아니라 대중들의 역사관과 국민정서가 그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지난 십 년간 밝혀졌다고 본다.
지난 십 년간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제아무리 이론투쟁을 선명하게 전개했다 하더라도,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하여 뉴라이트 운동 내에서도 역사학자가 아닌 이들은 제발 역사학자들이 나서서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 ‘극단적인’ 논리를 펼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뉴라이트 진영과 그들이 비판하는 소위 ‘민족주의’자 사이에 제대로 된 학술토론이랄 게 벌어지지 않았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데에는 뉴라이트 진영에도 큰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학술토론의 영역과 별개인 대중에 대한 설득의 영역에선 아무런 역량도 보여주지 못했다. 대중과 학생들의 역사관을 바꾸겠다고 천명했으면서 그 부분에선 성과가 없었고 다만 권력의 힘을 빌어 교과서를 만들어 내고 검인정을 통과한 후 채택되도록 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 9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이는 뉴라이트나 교학사 교과서 제작자 측이 자신들의 논리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것이 일단 교과서로 채택되고 그걸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어떻게든 그들이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사람들을 세뇌한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 사태파악을 못 하고 막연히 소수 좌파들 말고는 자신들에게 반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도 미련한 일이다.
새누리당이 국정교과서로의 회귀를 운운하는 상황은 이 뉴라이트의 미련한 짓에서 나온 망신에 대한 연대책임에 해당한다. 친구가 망신살을 뻗치니 그 옆에서 엄동설한에 나체쇼를 펼쳐서라도 도와주겠다는 식이다. 검인정 교과서 체제로 개편된지 십 년이 넘었는데,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만 예외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복수의 보도에서 나온 바 청와대나 교육부 관료들조차 이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새누리당 인사들 역시 “국정교과서로 가자고 결론을 내린 건 아니다”라면서도 이렇게 교과서 문제가 첨예한 이슈가 된다면 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음을 검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건 교학사 교과서인데 검인정 교과서 체제를 문제삼는 적반하장의 논리다.
물론 민주당 측에서 말하는 독재체제로의 회귀라는 수사도 지나친 부분이 있다. 국정교과서 시대와 독재체제는 온전히 포개지지 않는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온 제도변화의 흐름을 도대체 왜 역진해야 하는지를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정교과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정국 운영이 제대로 안 되었을 때 국회선진화법을 들고 나온 것과 유사한 일이다. 자신들도 동의한 어떤 흐름을 잠깐 불리하다고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뒤집고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려버리는 조악한 수준의 정치다.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시늉 정치’를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 역시 행여나 새누리당의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현실화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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