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1일 저녁 원장 공관에서 벌어진 국정원 간부 송년회에서 “오는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보도는 남재준 원장은 이날 간부들에게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라고 전했다.

▲ 24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복수의 언론은 이날 남재준 원장이 간부들과 함께 자신의 애창곡인 독립군 군가 ‘양양가’를 불렀다고 전했다. ‘양양가’의 가사 중에는 "인생에 목숨은 초로(草露)와 같고 / 이씨조선 오백년 양양하도다 /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 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이다"라는 부분이 있다. <조선일보>가 전한 남재준 원장의 발언과 잘 맞아떨어진다.
<조선일보> 기사는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측근들에게 “남 원장은 참 기개가 좋으시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기개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정원장과 통일부장관이 대북정책에 대해 시각차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이견의 이면에는 ‘군 출신’과 ‘외교관 출신’의 시각차가 있다고 분석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북한 김정은 정권이 장성택 사건으로 취약해져 있기에 이 참에 북한을 더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대북 적극론’에 동의하는 이들이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관진 국방부장관 등 군 출신이라는 것이다. 반면 류길재 통일부장관, 윤병세 외교부장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신중론이거나 중립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재준 원장이 군인 시절 강직하다는 평판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군인은 취해 있으면 안 된다며 장성들의 술자리에서도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하지만 강직한 군인의 미덕은 국정원장의 직무에는 해악일 수 있다. 남재준 원장은 국정원 간부들에게 “북한은 섬멸의 대상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정보전의 책임자로서 적절한 인식인지 의문이다.
▲ 24일자 조선일보 8면 기사
그러나 남재준 원장의 인식이 군 출신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것만이 사태의 핵심은 아니다. 북한 정권이 불안하고 통일이 성큼 다가왔다는 식의 낙관론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제제조치의 결과 북한이 남한에 굴복하거나 붕괴할 수 있다고 보았다. 통일을 대비하여 ‘통일세’와 같은 언급을 하기도 했다. 통일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수야 없지만 그것이 보수정권 특유의 막연한 장밋빛 희망에 근거한 대북적대정책을 낳는다는 게 큰 문제다.
적대정책 결과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민주정부의 햇볕정책을 폐기한 결과 북한과 접촉하던 ‘선’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도 두고두고 문제가 되고 있다. 민주정부 시절에도 북한의 도발과 서해에서의 교전이 있었기에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을 온전히 대북적대정책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도발의 수위가 과거와는 달랐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예고했고 그 부분에서 지지층은 물론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군 출신을 선호하는 인선은 남재준 원장과 같은 이를 대북정책의 장으로 끌어 들였고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까지 끼어 동북아 국제정세가 복잡해지는 시대에 북한을 붕괴시키는 정책을 펴는게 타당한 일인지, 만일 북한이 붕괴할 경우 남한이 감당해야 할 위험은 계산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조선일보>에서도 지적한 바 북한 주민들의 상당수가 정권 붕괴시 남측과의 통일보다는 중국 측으로의 흡수를 더 선호한다는 흐름이 견지되는 실정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부르짖는 것이 그 어휘가 지칭하는 결말을 가져올 수 있을지 우려된다.
‘양양가’는 가사에서도 감지되듯 왕조시대 충신들의 노래다. 왕조시대 충신들을 선호하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본인이 약속한 대북정책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김씨조선'을 증오하는 '박씨조선'의 충신들이 단합한 결과다. 그리고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대단히 난망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목적은 오직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이었을 뿐 다른 꿈은 없었던 것인가 싶을 정도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박 대통령의 꿈은 이미 이루어졌으니, 이제 남은 4년은 누구의 꿈을 이루게 될 것인가. 우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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