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카페 넓은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평화롭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늘진 나무 아래의 빛은 적당히 따사롭고, 적당히 안락하다. 쾌적한 공기 상태와 온도가 유지되는 카페에 앉아 있으면 세상은 살만해 보인다. 낮 기온이 35도를 훌쩍 넘어버렸다는 뉴스는 모두 가짜 같다. 이 정도 날씨에, 이 정도 온도라면 몇백 년, 몇천 년도 지금 이대로 살아도 될 것 같다.

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디디는 순간 생각은 화르르 타버린다. 밖은 사정없이 내리쬐는 뙤약볕에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이다. 숨이 턱 막힌다는 표현은 이때 사용하는 말이다. 숨을 쉴 때마다 더운 숨이 입과 코를 통해 한 움큼씩 나온다. 땀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몸 전체가 커다란 땀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땀은 온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손수건은 요조숙녀가 다니는 에티켓 용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9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 카운티 키헤이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있다. (키헤이[美 하와이주]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 카운티 키헤이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있다. (키헤이[美 하와이주] AP=연합뉴스)

땡볕에 주차한 차는 그야말로 달구어진 프라이팬이다. 에어컨을 최대한 틀어도 쉽게 온도는 내려가지 않는다. 차가 터져버리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시동을 거는데 친구한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한다. 40도라고 선명하게 각인된 사진과 함께 도착한 친구의 말은 ‘미쳤다. 날씨 미쳤어.’이다. 분명 날씨가 미친 게 분명하다. 전국이 35도가 넘는 찜질방으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다.

타죽을 것 같은 상태는 나만의 고통은 아니다. 나라 전체가 폭염 때문에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산과 들, 강도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의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어 기온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발생한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머리 위에서 작렬하던 태양이 진 밤도 다를 게 없다. 아스팔트에선 여전히 열기가 올라오고 에어컨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된다. 에어컨을 켜는 것이 기온 상승이라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라는 것을 알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지구 자생 시스템에 위험을 알리는 빨간불이 켜졌다. 지구 온난화라는 표현은 대과거형에 속한다. 지금 지구는 ‘지구 열대화’로 접어들었다. 지구 어느 한 곳에서 기온은 미친 것처럼 오르고, 건조하고 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한 숲은 자연발화해 타오르고, 반대편 지역에서 500㎖가 넘는 비가 한 번에 쏟아져 강이 범람하여 겨우 목숨만 건지는 일이 벌어진다. 태풍으로 도로와 집이 부서지고, 마을이 파괴되어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울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걱정하는 모습이 뉴스를 통해 전해진다.

그리스 로도스섬 산불 진화하는 비행기 (로도스[그리스] AP=연합뉴스), 미국-캐나다 국경 넘어 번지는 산불 (오소유스[캐나다] 로이터=연합뉴스), 폭염 영향 속 산불이 발생한 칠레[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얀마, 홍수로 6만여명 수재민 발생 [AFP 연합뉴스 자료 사진]
그리스 로도스섬 산불 진화하는 비행기 (로도스[그리스] AP=연합뉴스), 미국-캐나다 국경 넘어 번지는 산불 (오소유스[캐나다] 로이터=연합뉴스), 폭염 영향 속 산불이 발생한 칠레[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얀마, 홍수로 6만여명 수재민 발생 [AFP 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구 기온은 빠르게 상승하며 매년 최고 기온을 갱신하고 있다. 매년 비가 내리지 않아 물 부족으로 농작물이 햇볕에 타들어 가는 것을 손놓고 보아야 하는 사람들, 마실 물조차도 없어 몇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겨우 물 한 동이를 이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구 반대편에서는 태풍으로 물난리가 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적당한 게 없다. 지구 열대화는 지구인이 불러낸 재앙 중 가장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며칠 전까지 꼭 죽을 것처럼 더웠다. 더위가 식기도 전에 모두 쓸어 버리겠다고 작심한 듯 무서울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산이 무너져 내리고, 집이 부서지고, 물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차도와 인도는 구분 없이 빗물이 가득한 수로로 변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무심코 사용한 휴지, 아무 생각 없이 쓴 종이컵, 매년 사는 옷, 택배 상자, 마트에서 받은 비닐봉지, 낱개 포장된 과자 봉지, 일회용 생수통 등. 지구를 뜨겁게 열받게 하는 일을 생각 없이 하고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 식당에서 사용하는 컵을 1회용 종이컵으로 대체한 식당이 많았다. 그때 1회용을 사용하기 시작한 식당은 여전히 1회용 컵을 쓰고 있다. 감염과 위생의 문제를 생각하면 옳은 방법일 수 있지만 1회용 컵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물을 마실 때 망설여지게 되었다. 마시지 않고 참고 나올 때가 많았다. 결국 개인 휴대용 컵을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이런 행동이 지구 열대화를 늦추기엔 턱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로 나름 부채감과 죄책감을 깃털만큼 널어낸다.

7월 16일 퍼니스 크리크 관광 센터 앞에 있는 데스밸리 비공식 기온 측정기 옆에서 기후대응 시위를 벌이는 사람 [AFP=연합뉴스]
7월 16일 퍼니스 크리크 관광 센터 앞에 있는 데스밸리 비공식 기온 측정기 옆에서 기후대응 시위를 벌이는 사람 [AFP=연합뉴스]

개인 휴대용 컵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푸르고 아름다운 별은 불타오르는 붉은 별로 변해 버릴 것만 같다. 훗날 우리 후손에게 지구는 한때 푸르고 아름다운 별이었어, 라는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한 번도 푸른 별을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푸른 별의 전설을 들려주는 때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