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문현숙 칼럼] 디지털 감시 사회에 자유가 없는 노동자들. 일에 찌들려 도망치고 싶어도 그만둘 자유가 없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글이나 사진, 동영상을 올리는 평범한 일상도 여차하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신장에서 트럭을 모는 한 운전사는 어느 날 한밤중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끌려가 음성 녹음과 홍채를 스캔당했다.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공부하던 여대생은 잠시 고국에 들러 인터넷 우회접속 프로그램을 이용하다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분류됐다. 얼굴 인식 카메라가 설치된 이슬람사원을 자주 방문하다 감시시스템에 걸려 체포된 사람들도 있다.

인류학자 대런 바일러가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를 통해 고발한 인권 탄압 사례들이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실리콘밸리와의 디지털 경쟁 속에 뛰어난 생체 감시기술을 익혔다. 카메라 네트워크의 정밀도를 높여 0.8초 만에 얼굴 일치 여부를 확인한다. 이런 첨단기술로 중국은 테러 방지를 앞세워 신장 위구르 지역의 소수민족에게 식민지정책을 감행하고 있다. 테러와의 인민전쟁이 곧 애국전쟁이라는 기치 아래 수용소 구금자들에게도 “애국하라, 조국에 해로운 것은 반대하라”고 강조한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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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을 이용한 감시와 인권 착취는 국경지역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말 시진핑 체제의 검열과 통제에 항거한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대학생들의 ‘백지시위’ 대응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당국의 눈을 피해 텔레그램 등 외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산보 가자”라는 식으로 시위에 삼삼오오 조심스럽게 참여했지만 중국 당국은 이들의 신원을 신속하게 파악했다. 참여자들의 스마트폰에 탑재된 위치 추적과 밀도 높은 얼굴 인식 카메라로 모자에 마스크를 썼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 언론은 대부분 관영 매체로 권력의 견제자가 아닌 대변인 구실을 한다. 대외적으로 이런 언론들만 보면 중국의 실체 여론을 파악하기 힘들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데 14억 명이 넘는 인구인 만큼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들은 팔로우가 1천만 명에 가깝고 한번 인기를 끌었다하면 조회수가 어마어마하다. 공산당 체제는 이런 여론 주도자를 겨냥해 상시적으로 감시 뒤 포섭하거나 여론 공작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댓글부대를 활용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뜨리곤 한다.

생체 감시의 해악은 중국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빅테크가 활동하는 지구촌 어디라도 자유롭지 않다. 서울의 공공 감시카메라(CCTV) 숫자도 2년 전과 견줘 2배가 늘어 세계 최상위권으로 떠올랐다. ‘치안’ 확대라는 뒷면엔 국가의 시민 감시가 그만큼 커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소통보다 검찰의 감시체제를 무기로 언론을 심각하게 통제하고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보수든 진보든 정부여당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길들이려는 속성은 존재했다. 그러나 윤 체제는 애초부터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을 찍어 취재진 전용기 탑승 배제, 형사고발, 기소에 이어 압수수색 등으로 압박하며 강도 높은 언론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를 띄워주는 보수매체의 주문엔 화답하고 쓴소리하는 진보매체엔 명확한 근거도 없이 ‘가짜뉴스’라며 오보 언론으로 낙인찍는 편가르기로 갈등까지 조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출국을 앞둔 11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 단체들이 MBC 취재진에 대한 대통령실의 전용기 탑승 불허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출국을 앞둔 11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 단체들이 MBC 취재진에 대한 대통령실의 전용기 탑승 불허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방송 장악을 위한 정지작업은 갈수록 속도를 보인다. 가장 먼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장악이다. 윤 대통령은 결국 전 정부 때 임명된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티브이(TV)조선> 재승인 관련해 검찰 기소를 사유로 들었으나 논리가 빈약하다. 방통위는 방송의 독립성 보장과 공적 책임 제고를 위해 설립된 합의제 기구이다. 이런 취지를 무시한 채 임기가 7월이면 끝나는 방통위장 해임을 강행한 것은 방통위를 장악해야 공영방송 경영진도 친정부 인사로 물갈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낙하산 사장을 보내야 방송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속내가 보인다. 실제로 차기 방통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때 언론 장악에 나섰던 윤 대통령 최측근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에서 증언한 여대생은 수용소에 구금된 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공포에 질려 그들의 지침대로 국가 이념을 선전하는 글에 ‘좋아요‘를 꾹 누르게 되었다.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하라”는 당국 요구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내년 총선에 애국주의를 내세운 정치세력의 여론 조작 댓글부대가 어른거리는 것은 기우일까. 언론의 자유가 훼손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은 쉽지 않은 까닭이다.

*  문현숙 민언련 정책자문위원/ 前 한겨레 기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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