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낙마한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 관련 논란은 묘하다. 뻔한 얘기 같으면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대목도 있다.

대다수 언론은 ‘검증 실패’를 지적한다. 경찰청장 책임론도 있고 대통령실이나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책임을 거론하는 지적도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은 개방직으로 경찰청장이 추천하면 행안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애초에 경찰이 검증했어야 하고, 대통령실 또한 검증했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들의 학교폭력과 이에 대한 대응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통한 검증은 일단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정순신 변호사가 인사정보관리단이 보낸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의 “본인·배우자·직계존비속이 원고나 피고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느냐”는 질문 항목에 대해 ‘아니오’라는 답을 기재했다는 것이다. ‘아니오’라고 답하면 그 대목에 대해선 검증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이었도 이런 수준의 검증이 진행됐을지 의문이다.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2대 수장으로 내정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로 26일부터 본부장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갔다. 사진은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연합뉴스)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2대 수장으로 내정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로 26일부터 본부장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갔다. 사진은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연합뉴스)

오히려 검증 부실은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는 인사였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언론 보도를 보면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지난해부터 나온 관측이라고 한다. 수사 경찰을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을 검사 출신이 맡는 것은 상당한 파장이 우려되는 일이다. 당시에도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현실성 없는 일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경찰 입장에서는 치욕일 것이다.

‘검사 출신 국가수사본부장’ 아이디어는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밀어 붙이던 시절에도 나왔던 얘기다. 검찰 수사권 축소 등이 이뤄지더라도 반격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는 취지였다. 실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시행령을 개정해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의 효력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등 당시의 ‘반격 시나리오’는 상당부분 현실화된 측면이 있다. 여기에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문제가 논란이 되고 경찰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경찰 조직에 대한 ‘그립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됐을 수 있다. ‘검사 출신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아이디어가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주목받았을 가능성은 상당하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태원 참사 대응에서 확인된 것처럼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입장이다. 정순신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검장이던 시절 서울중앙지검에서 인권감독관을 지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당시 3차장 검사였는데, 이들은 사법연수원 동기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직에 지원했을 때, 경찰 수뇌부 입장에서 정순신 변호사를 추천하는 것 외의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 이 ‘다른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으므로 ‘검증’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검증 과정도 마찬가지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는 이미 과거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당시 ‘고위직 검사’로 표현되었지만 이 정도 표현만으로도 검찰 조직이 사실관계 파악을 진행하기에는 충분하다. 특히 자기들끼리의 경쟁 관계 형성에 몰두하는 검사들이 이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이번에도 ‘세평’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던 내용이라는 거다. 정순신 변호사 이름으로 판결문을 검색만 했어도 당시 사건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아니오’라는 답변 하나를 근거로 검증 부실을 설명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결국 답이 정해져 있으니 제대로 검증할 수 없었다는 답이 가장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현 정권의 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이러한 인사 방식은 이미 취임 초기부터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이런 비판이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은 ‘민변 출신’을 운운하며 전 정권 탓을 했는데, 이 발언은 지지율 하락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논란 이후에도 이러한 인사가 반복되는 걸 보면 정권은 이러한 인사 방침에 대한 비판에 별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태도인 걸로 보인다.

그러나 계속 이런 식이라면 부작용의 심각성만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경찰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국가수사본부장에 걸맞은 인사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뒀으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혹여 경찰이 자체 검증에 실패했더라도 그에 맞는 책임을 따로 지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이러한 순리가 아니라 억지로 조직을 장악하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초기에야 어땠을지 몰라도 이러한 인사들은 뒤로 갈수록 정권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연일 대출금리 등 은행권 얘기를 하는 검사 출신 금감원장은 어떤가? ‘금융대통령’이냐는 등의 비판에 이어 이제는 “검찰에서 굴러 온, 기본이 안 된 금감원장”이란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검증 실패도 책임지고 보완해야겠지만 이런 식의 인사 스타일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반드시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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