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광택 칼럼]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중구 정동 소재 경향신문사 13층에 있는 민주노총 사무총국과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제주 세월호 제주 기억관 평화쉼터 사무실 등 10여 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하여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특히 민주노총 압수수색에는 아침 출근 시간에 수백 명의 경찰력이 정동길을 봉쇄하고 소방차와 에어매트·사다리차까지 동원하여 엄청난 사건인 것으로 비춰졌다. 또 여러 명의 국정원 직원들이 “국가정보원”이라는 표식을 선명하게 붙인 조끼까지 입고 노조원들과 대치한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민주노총에서는 출근 시간에 한 시간 이상 사무국 요원들과 대치한 끝에 민주노총 소속 변호사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5명의 수사관을 먼저 들여보내 압수수색을 하였다. 보건의료노조에는 6개 중대 200명의 병력이 동원되었다.

18일 오전 경찰들이 국정원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전 경찰들이 국정원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들이 압수수색한 것은 민주노총 조직국장을 지낸 A씨,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B씨,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C씨, 제주 평화쉼터 대표인 D씨 등이 사용한 책상·캐비닛 등이었다. A씨는 2016~2019년까지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출국해 북한 노동당의 공작원 등을 접선하였고 B, C, D씨를 각각 포섭해 관리하는 총책 역할도 맡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 각 조직에서 1명씩의 용의자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출근 시간대에 수백 명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조직의 사무실에 요란하게 진입하여 하는 수사는 무얼 의미하는가? 더구나 국정원은 “수년간 내사해온 사건”이라면서 갑자기 압수수색을 단행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국가정보원” 조끼까지 입고. 10‧29 이태원 참사의 경우에는 행사하여야 할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공권력을 시위하듯 과잉 행사한 것은 아닌가?

공권력의 행사함에 있어서는 비례의 원칙(Verhältnismäßigkeitsprinzip)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례의 원칙이란 행정주체가 행정목적을 실현할 때에 그 목적실현과 수단 사이에 합리적인 비례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과잉금지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비례의 원칙은 현대 법치국가의 기본개념에 속하며, 「헌법」 제37조 제2항,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조 제2항, 「행정소송법」 제27조 등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불태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례의 원칙은 영업정지, 음주운전 등의 정지, 취소에 대한 행정심판 청구 시에도 많이 거론되는 원칙으로, 행정기관이 관련법규를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법률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특정한 조치를 취하였다면 이는 목적의 정당성을 벗어난 비례의 원칙 위반으로 본다. 노동쟁의에 있어서도 노동조합의 쟁의수단인 파업과 사용자의 쟁의수단인 직장폐쇄 사이에 비례의 원칙이 적용되며, 쟁의수단의 과잉사용은 위법하다고 할 수 있다.

19일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위원장이 압수수색에 대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위원장이 압수수색에 대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비례의 원칙은 ①적법한 목적 ②적합성의 원칙 ③필요성의 원칙 ④상당성의 원칙 4가지로 구성되는데 서로 단계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즉 많은 적합한 수단 중에서도 필요한 수단만이, 필요한 수단 중에서도 상당성 있는 수단만이 선택되도록 단계적으로 검토하여 처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단계에서 어느 하나라도 위반되면 비례원칙에 위배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 4단계 원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적법한 목적 Legitimer Zweck→ 이 조치를 통해 국가는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가? 그 목적은 적법한가? 국가는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 그 수단은 적법한가?

2. 적합성의 원칙 Das Mittel muss geeignet sein→ 행정청의 행정작용은 행정권이 추구하는 행정목적의 달성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핵심인데, 다만 가장 효율적인 수단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목적달성에 기여할 수 있으면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행정 목적달성에 부합이 된다면 A, B, C 등 여러 안(案)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정목적을 실현하는 데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 필요성의 원칙 Das Mittel muss erforderlich sein→ 최소침해의 원칙이라고도 하며, 적합한 수단 중에서도 일반 국민에게 가장 최소한의 침해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A, B, C안 중에서 B가 가장 국민에게 최소침해를 주는 것이라면 B를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4. 상당성의 원칙 Das Mittel muss angemessen sein → 행정청의 행정작용이 적합하고 국민에게 최소한의 침해를 주는 처분이라 해도, 전체적으로 상당한 균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행정청의 처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공익과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교량하여 공익이 클 때만 처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권력 행사에 있어 압도적인 무력으로 대상을 제압하는 것은 ①적법한 목적이 있었고 ③필요성의 원칙에 맞을지라도 ②적합성의 원칙과 ④상당성의 원칙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수많은 공권력의 행사에서 이를 구별해내는 것도 법치국가에서의 언론의 사명이 아닐까? 나아가서 사인 간의 권리행사에도 이 원칙이 관철되어야 할 것이다.

* 이광택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87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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