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난 25일 미야와키 사쿠라 글로벌 팬 연합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소속 회사 하이브와 쏘스뮤직을 향해, 사쿠라에 대한 악성 루머와 언어폭력에 법적으로 대응해달라고 요구했다. 팬 연합 성명서에 따르면, 한국 커뮤니티에서 생산되는 악의적 루머가 중국까지 퍼져 틱톡과 웨이보에서 조회 수가 500만을 넘었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악의적 루머 및 명예훼손이 데뷔 이후 무분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 양과 수위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회사의 지속적 모니터링과 피드백, 강경한 법적 대응 공지, 신속한 고소 진행 및 상황 보고가 팬 연합의 요구사항이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걸그룹 르세라핌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걸그룹 르세라핌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 Ⓒ연합뉴스

아이돌 팬덤이 기획사에 아티스트 보호를 요구하는 건 흔한 소식이다. 하지만 미야와키 사쿠라를 향한 악성 게시물들은 정말이지 예사로 넘길 정도가 아니다. 검색을 통해 실상을 들여다보면 인격과 사회성을 갖춘 사람들의 상식을 넘어선다. 안티 집단의 조직적 루머 유포와 헤비 악플러 개개인의 집요한 사실 왜곡, 익명 게시판에서의 만성적 언어폭력이 들끓는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2018년 아이즈원 데뷔 직후, 유저 참여형 백과사전 나무위키에서 특정 사용자가 무려 50여 개의 다중 계정을 만들어 미야와키 사쿠라 항목을 수정하고 악의적 서술을 가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사쿠라에 관한 악성 게시물은 익명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연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인된다. 특히 몇몇 디씨 인사이드 악성 아이돌 갤러리엔 인간성을 버린 게시물이 도배되어 있다.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끔찍한 욕설과 허위 사실 유포가 언제 어느 때건 게시판을 뒤덮고 있다. 이게 벌써 4년째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들이 쓰는 비방 논리나 자료가 일반 커뮤니티와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음지에서 일어나는 일로 치부할 단계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런 악성 게시물들은 사쿠라가 놓인 활동 배경과 관련이 있다. 사쿠라는 일본 아이돌 HKT48 멤버로 활동하다 한일 합작으로 치러진 2018년 엠넷 오디션 방송 <프로듀스 48>에 출연하며 아이즈원으로 데뷔했다. <프로듀스 48>이 방송되기 전부터 한국에는 HKT48을 비롯한 AKB48 그룹 팬들이 소수 있었다. 이들은 연예 커뮤니티 더쿠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숫자가 적고 폐쇄적인 만큼 팬덤 간 이전투구가 심했다. 사쿠라를 포함한 AKB48 멤버들이 한국에 넘어와 방송에 출연하는 과정에서 특정 출연자 팬덤이 사쿠라 헤비 악플러로 전업하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다중 아이디 50개를 동원한 문서 테러가 이런 맥락에서 벌어졌다.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한편으론 <프로듀스 48> 제작진의 연출 방식이 무책임했다. <프로듀스 48>은 최초의 한일합작 오디션으로 화제가 됐고, 연습생 팬덤 간 경쟁 구도가 ‘한일전’으로 치러졌다. 제작진은 사쿠라를 일본 연습생 대표처럼 연출하며 그의 스타성으로부터 방송의 화제성을 끌어냈다. 그중엔 사쿠라가 뱉은 일본말 번역을 날카로운 뉘앙스의 단어로 바꿔 치는 등 선정적이고 무리한 장면들도 있었다. 방송 이후의 출연자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고 흥행을 위해 이용하는 연출이 사쿠라에 관한 가십이 되고 이미지 소모로 이어졌다. <프로듀스 48>은 그 어떤 시리즈보다 팬덤 전쟁이 과열됐었다. 방송 시청자들을 넘어 국내 케이팝 팬덤이 한일전에 몰입하며 끼어들었고 그 과몰입을 사쿠라에게 투사하며 공격했다. 그렇게 결성된 안티 세력이 <프로듀스 48>로 탄생한 아이즈원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는 면이 있다.

걸그룹 시장은 극도로 과포화돼 있다. 최근 걸그룹 산업도 많이 커졌지만, 여전히 보이그룹 신보다 규모가 작은 데도 경쟁은 훨씬 치열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주요 기획사에서 데뷔한 신인 그룹이 다섯 팀이고, 아이즈원 파생 그룹만 두 팀이다. 좁은 씬의 파이와 이전 그룹이 남긴 유산을 둔 상태에서 비교적 늦게 데뷔한 르세라핌이 주목을 받았고 그중에서 사쿠라가 타깃이 된 것이다. 이전부터 형성된 안티 세력이 있으니 사쿠라는 굉장히 취약한 포지션에 놓여 있다.

르세라핌, 트위터 '블루룸 라이브'로 50만 팬과 소통 [쏘스뮤직 제공=연합뉴스]
르세라핌, 트위터 '블루룸 라이브'로 50만 팬과 소통 [쏘스뮤직 제공=연합뉴스]

아이즈원을 맡았던 CJ E&M은 왜 악플에 대응하지 않았을까? 아이즈원은 시한부 그룹이었다. 어차피 해체될 그룹의 멤버들을 챙기지 않았다. 멤버 개개인의 보호는 원 소속사들 몫이었고 사쿠라는 한국에 아무런 연고도 소속사도 없었다. 악플러를 고소해 줄 소속사가 없는 외국인 아이돌, 이것이 악플러들에게 기지개를 펴며 키보드를 두들길 안도감을 줬다. '사쿠라 헐뜯고 욕하기'가 삐뚤어진 감정에 찬 이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동족적 정체성을 다지는 스포츠가 된 것이다.

이는 하루이틀에 걸친 상황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팬들은 대응을 요청할 수 있는 소속사가 없었고 아티스트 이름에 멍이 드는 걸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다. 이건 사쿠라와 르세라핌이란 그룹을 넘어 이 산업이 품은 어둠이자 많은 아이돌과 유명인이 앓고 있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악플에 대한 법적 대응은 표현의 자유와 연결되는 논점이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이 정도로 도를 넘은 '사이버 폭력'에 대해서는 인권을 지키기 위한 차원의 대응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소속사의 책임 있는 응답이다. 하이브와 쏘스뮤직은 더 이상 악플에 대응하는 대신 악플을 받는 대상을 국내 활동에서 뒤로 밀어 그룹에 가는 영향을 줄이는 방식으로 상황을 미봉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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