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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정너' KBS, "입사하면 파업할 거냐" 물어봐[기자수첩] 무조건 "불법파업" KBS, 무슨 답을 듣고 싶었나
곽상아 기자 | 승인 2012.08.24 17:45

   
▲ 22일 새 노조 노보 캡처.

*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신조어

KBS가 올해 39기 신입사원들을 공개채용하면서 응시자들에게 '노조'와 '파업'에 대한 개인 소신을 물어 본 것으로 드러났다.

KBS 새 노조가 지난 10일 신입사원 설명회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31명의 신입사원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50명이 '노동조합'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노조 파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15명)
최근 언론사 파업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13명)
입사하면 파업에 참여할 것인가? (9명)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5명)
회사의 결정이 본인의 의견과 다르다면 어떻게 하겠나? (5명)
노조위원장을 시키면 할 것인가? (1명)
조합에서 주장하는 문제의 다큐 및 보도에 대한 찬반 의견은? (1명)
언론파업을 하는 친구를 만난다면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1명)
노조의 장단점은? (1명)
파업 때문에 1박 2일을 못봤는데 시청자로서 어땠는가? (1명)
방송인이 사회 현상에 참여해야 하는가? (1명)
파업에 대해 KBS 직원의 입장과 시청자 입장에서 설명해보라. (1명)
이전 회사에서 노동조합이 있었나? 어떤 활동을 했나? (1명)

22일 새 노조는 이를 두고 "요즘 같이 취업이 힘든 시기에 사용자 측에 선 면접관이 파업과 관련한 소신을 물었을 때 지원자 스스로 갖고 있는 소신을 가감없이 밝히기는 쉽지 않다"며 "사측이 집중적으로 캐묻은 파업관련 질문은 그야말로 사상검증"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자로서 파업을 할 수 있는 단체행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중 하나인데, 이런 당연한 권리를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몰상식한 행위"라는 것.

즉각, KBS사측이 반박에 나섰다. "언론파업사태가 질문에 포함된 것은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며 "면접관은 지원자에게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다"는 것.

KBS 인사부도 별도의 입장을 내어 새 노조를 향해 "왜곡된 사실로 KBS 채용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킨 것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와 즉각적인 정정보도를 요청한다"며 "빠른 시일 내에 책임있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끝까지 엄정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사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전체 중 소수에 불과하고 이들이 받은 노사관계에 관한 질문은 다양한 질문 중 극히 일부일 뿐"이라며 "(새 노조가) '면접은 사상검증'이라는 표현을 통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전형제도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노조도 재반박에 나섰다. 새 노조는 24일 "전체 131명 중 50명이 소수인가?"라며 "전체 면접자 중 '소수' 아니 단 한 명에게 사상검증이 자행됐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KBS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이해하지 못하는가?"라고 물었다. "KBS는 다른 기업과 달리 '언론 자유를 구가하는 주체'로서 국가기간 방송이자 공영방송이다. KBS의 기본적 위상과 의무를 생각하지 않고 어찌 이런 질문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가?"라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을 부정하는 것이며 방송법에 부여된 공익적 기능을 부정하는 위법행위임이 자명하다"는 것.

이번 '사상검증' 논란과 관련해, 파업에 대해 긍정적인 소신을 밝힌 지원자가 실제 탈락했는지, 파업 관련 질문이 당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면접과정에서는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다" "(언론파업 사태를 물어 본 것은) 사회 이슈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KBS의 원론적인 해명이 전혀 설득력 없는 것은 KBS가 지난 몇 년간 '노동조합', 그리고 '파업'에 대해 일관되게 보여왔던 태도 때문이다.

"사내 일부 직원들이 참여한 것이었지만 석달 넘게 파업이 지속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파업을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자세를 되돌아보는 준엄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김인규 KBS 사장, 새 노조 파업 종료 직후인 6월 11일 월례조회사 가운데)

"이번 파업 찬반투표는 정치적인 요구사항을 관철하려는 불법파업이므로 회사 차원에서 법과 사규에 따라 엄정 대처할 것이다."(KBS 기존노조가 '방송법 개정 촉구'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하자 KBS 홍보실이 4월 12일 발표한 보도자료 가운데)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시청자에게 공정한 방송을 제공해야 할 공영방송 KBS 내부 구성원들이 국민을 볼모로 정치 투쟁을 벌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KBS 새 노조가 파업 돌입하자 3월 7일 KBS 경영진 일동이 낸 입장 가운데)

"공영방송 KBS는 일부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불편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깊이 사과드린다."(새 노조가 단체협상 결렬에 따라 총파업 돌입하자 2010년 7월 9일 KBS가 발표한 입장 가운데)

KBS 새 노조가 회사측과의 단체협상 결렬에 따라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거쳐 2010년 7월 한 달간 진행했던 합법파업에 대해서조차 한사코 '불법'이라고 주장했던 KBS. 당시 KBS는 2009년 12월 출범한 새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청하자 수개월간 미루다가 '단체교섭응낙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하자 그제서야 단체교섭에 응했으나 이 마저도 무성의로 일관하다가 결국 총파업을 불러일으켰다.

   
▲ 2010년 7월 1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개최된 새 노조 총파업 출정식 모습. 당초 출정식은 본관 1층의 민주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50여명의 청경이 새 노조 조합원과 취재기자의 출입을 막아 본관 앞에서 약식으로 진행됐다. ⓒ곽상아

당시 '합법파업'에 대처하는 KBS의 모습도 '희한'했다. KBS는 청원경찰을 동원해 새 노조의 총파업 출정식을 막아서고, 출정식을 취재하러 온 타 언론사의 취재 기자들까지 끌어내렸었다. 인기 예능프로 <1박2일> 하이라이트 방송 도중에는 자막으로 새 노조가 '불법파업'을 하고 있다는 자막을 내보냈다가 정정보도를 요청받기도 했다. 새 노조 출범 초기, 김인규 사장이 주재한 임원회의 직후 보도본부의 모 간부가 보도본부의 새 노조 조합원들을 상대로 '더 이상 회사가 새 노조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며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 당시 KBS는 청원경찰을 동원해 총파업 출정식을 취재하러 온 타 언론사 취재 기자를 끌어내리기도 했다. 본관 앞 계단을 올라가던 민중의 소리 기자(가운데 파란색 옷 입은 사람)가 청원경찰들에 의해 제지당하는 모습. ⓒ곽상아

지난 몇 년간 KBS가 파업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내놨던 입장에서 단골 표현은 '명분없는 불법정치파업'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 일반 기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KBS  앞에서 과연 응시자들은 합격을 위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신조어가 있다고 한다. 음식을 한 엄마가 자식에게 "음식이 정말 맛있다"라는 답을 바라고 "맛있냐?"고 묻는 것처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답변자가 질문자가 바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공영방송 입사의 부푼 꿈을 가진 응시자를 상대로 의도가 빤히 보이는 질문을 하는 '답정너'처럼 행동한 KBS를 보며, 이 나라 공영방송 경영진의 수준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곽상아 기자  nell@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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