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종북좌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건국일을 언제로 보나’ 등의 질문을 한 것으로 드러나 ‘사상검증’ 논란이 일고 있다. KBS는 “순발력 등 기본소양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며 해명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진행 중’이다.

미디어전문지 <미디어오늘>은 6일 저녁, KBS가 최종면접 중 응시자들에게 ‘애국가 4절을 불러보라’, ‘애국가를 부르면 그 말을 지킬 자신이 있느냐’, ‘종북세력이 있다고 보는가’, ‘종북좌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건국일을 언제로 보나’ 등의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단독 보도했다. (기사 링크)

▲ 6일 저녁 보도된 미디어오늘 기사

<미디어오늘>은 “더 큰 문제는 KBS 측이 그런 질문을 던진 의도와는 별개로, KBS 시험을 준비하는 응시자 중 일부는 ‘KBS에 맞는 답변을 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식의 ‘자기검열’을 했다는 점”이라며 “양비론을 펴면 붙고 소신을 말하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왔다”는 KBS 신입사원 채용시험 응시자의 말을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와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의 발언을 인용, “KBS 측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신입사원을 선발했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KBS가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사상검증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KBS는 7일 오후 공식입장을 내어 ‘사상검증’ 논란에 대해 반박했다. KBS는 “종북좌파 관련 질문은 표현의 자유 한계,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등 대한민국의 시사현안 중 하나인 ‘이념 갈등’에 대해 예비언론인으로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다양한 주장과 그 근거를 이해하고 논리 있게 답변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 취지의 질문”이라며 “지원자가 종북좌파냐 아니냐의 사상검증을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KBS는 애국가 관련 질문에 대해서도 “예비언론인으로서의 순발력과 기본소양을 알아보기 위한 취지였다”며 “애국가의 일부 소절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KBS는 “일부 질문 내용을 확대 왜곡하여 마치 공영방송 신입사원 채용시험에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총 11개 분야의 다양한 지원자에 대한 수많은 질문 중 일부를 사상검증을 하기 위한 질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KBS 채용의 신뢰도를 왜곡하는 것이고, 개인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받아 합격한 KBS 신입사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나라도 ‘원하는’ 답 했을 것… ‘사상 틀’ 강요로 보여”

언론사 지망생들이 모인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아랑>(카페 링크)에서도 이번 사안은 뜨거운 논란거리다. 방송저널리스트(TV PD) 부문 최종면접을 치렀다고 밝힌 한 지원자는 “우리 사회에 종북좌파가 있습니까, 종북좌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미디어오늘> 보도 후 해당 사안이 널리 확산되며 언론사 지망생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몇 개의 질문만을 가지고 KBS를 어용언론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입장에서부터 ‘정말 솔직하기만 한 대답을 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민통합을 추구해야 할 공영방송 사장이 분열의 단어를,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사용했다는 점이 유감스럽다’ 등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언론사 지망생 A씨는 “언론사가 사상검증 질문을 한 것 자체가 문제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언론사마다 각자의 ‘경향’, ‘정치색’이 있기 때문에 선발 당시 이를 확인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도 “KBS라는 공영방송이 이런 질문으로 사상검증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자칫하면 공익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기본 취지에 어긋날 수 있고, 이른바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을 채용하는 것으로 보여 편향보도를 예고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시사현안에 대한 균형 있고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 애국가를 부르게 한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해명”이라며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고자 하는 취지는 수긍이 되지만 질문 내용이 너무 ‘좌편향’된 시각에 대한 비난 뉘앙스를 담고 있어, 과연 이 질문들이 합리적 근거를 들어 비판하는 ‘자질’을 평가하고자 했던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당사자였다면 제 성향에 따른 대답보다는 면접에 합격하기 위해 최대한 질문의 본의를 읽어 면접관들이 ‘원했을 것’ 같은 대답을 했을 것 같다”며 “마음 한켠에 불편하고 좋지 못한 감정이 들고, KBS가 신입사원에게 ‘사상 틀’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전했다.

▲ KBS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내어 공영방송의 공적가치를 실현하고 지역방송을 선도할 다양한 인재 128명(신입, 경력직원)을 선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미디어스)

언론사 지망생 B씨는 KBS의 최종면접 질문에 대해 “솔직히 황당하다”며 “가볍게 물었든 중요하게 물었든 문제인 것 같다. 충분히 국가관 검열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종북’은 무엇보다 옳은 단어도 아닌데 면접에서 저렇게 묻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B씨는 “면접을 준비할 때는 솔직히 개인적인 질문까지도 검열할 때가 있다. 면접관 마음에 들고 싶어서. 저런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 지 당황했을 것 같고, 에둘러 제 생각을 표현했을 것 같다. 확실히 말하면 안 좋을 수 있으니 모호하게 답했을 것 같다”며 “시험 당사자가 아닌데도 다분히 국가관 검열로 느껴지고, (질문에 등장한) 쟁점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임을 누구나 느끼고 아는데… 적절한 질문이 아니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KBS의 ‘질문 논란’을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7일 논평을 내어 “면접관들 의도와 관계없이 KBS에 있어서는 안 될 사상검증성 면접”이라며 “응시자의 자질과 인성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기엔 편향성이 너무 커, 응시자 성향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영방송으로서 소속 구성원에게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KBS가 신입사원들의 사상을 검증하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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