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동물학대 논란이 제기된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대해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낮은 수준의 제재로 판단된다. 다만 방송 프로그램 심의는 '내용'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촬영 과정에서 발생한 동물 학대 문제를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또한 KBS가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점이 정상 참작됐다.

지난 1월 1일 방송된 <태종 이방원>에서 태조 이성계가 말을 타고 사냥하다 낙마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해당 장면과 관련해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1월 19일 제작진이 말의 다리에 줄을 묶어 넘어지게 하는 촬영과정을 공개했다.

해당 말은 촬영 이후 일주일 뒤 죽었다. 이에 KBS는 지난 1월 20일, 24일 두 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회차 다시 보기를 중단했으며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동물 보호 조항 등을 추가했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1월 19일 페이스북에 올린 '태종 이방원' 촬영 장면. 말 다리에 줄을 묶어놓고 넘어지게 만드는 낙마 장면을 촬영했다. 이에 말의 뒷다리가 90도로 들린채 앞으로 넘어졌다. (자료제공=동물자유연대)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19일 회의를 열고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이번 심의에 방송심의 규정 제26조 3항과 제27조 5항이 적용됐다. 26조 3항은 내용 전개상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동물을 학대하거나 살상하는 장면을 다룰 때는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7조 5항은 방송 표현이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이다.

이날 심의에서 윤성옥 위원은 “미국이나 영국의 BBC의 경우 (영화, 드라마의) 출연 동물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상세하게 마련돼 있다”며 “동물권이라는 것이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왔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은 “현재 조항으로는 해당 프로그램을 심의하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조항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 위원은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방송자문특위도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심의규정 위반으로 판단했다”면서 “다만 사건 이후 KBS와 동물보호단체가 협의를 해서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점을 고려해서 법정제재 사안까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우석 위원은 “사회적 파장도 컸고, 사안이 전체적으로 중하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 측이 두 번의 사과와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봐서 법정제재까지 갈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민영 위원은 “촬영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방송된 내용이 아닌 제작 과정에서 생긴 이유를 들어 심의하는 것은 심의 범위를 넘어간다는 생각”이라며 “심의규정도 방송 장면에 관한 내용으로 한정한다. 방송 제작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어서 방통심의위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광복 소위원장은 “제26조 3항 심의 규정을 해당 안건에 적용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 “해당 안건과 관련해 954건이나 민원이 접수됐는데, 만약 말이 죽지 않았다면 촬영 과정에서 무리가 있었을 수 있어도 문제없이 넘어갔을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소위원장은 “방송소위는 방송된 내용을 심의하는 것이지 촬영 과정에서 벌어진 일까지 관여할 사안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황성욱·윤성옥·김우석 위원은 행정지도 ‘권고’, 이광복 소위원장·정민영 위원은 ‘문제없음’ 의견을 내 다수의견으로 행정지도 ‘권고’가 결정됐다.

해당 프로그램 심의 이후 윤성옥 위원은 조항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 위원은 “제26조 3항은 추상적이고, 제27조 5항은 포괄적이어서 자의적으로 심의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윤 위원은 "동물 사고와 관련한 심의에 규정의 한계를 느꼈다”며 “추후 동물보호와 관련한 심의규정 개정작업 준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