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의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1심 판결을 둘러싼 논란은 황당하다. 판결에 의하면 ‘검언유착’은 사실상 실체가 없다. ‘검언유착’이란 채널A 소속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한 증언을 받아내기 위해 현직 검사의 위세를 빌려 감옥의 이철 씨를 협박했다는 의혹이다. 즉, ‘검언유착’이란 현실적으로 현직 검사가 기자의 취재에 실제로 조력할 의사가 있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1심 판결을 보면 이 사건은 오히려 이철 씨의 대리인을 자처한 지모 씨가 주도한 것에 가깝다. 지모씨는 실재하지 않는 장부와 목록 등을 근거로 채널A 기자를 ‘낚았다’. 재판부는 채널A기자가 제시한 유력 검사와의 통화를 암시하는 녹취록은 급조된 것이라고 봤다. 전직 채널A 기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녹취록은 자신의 창작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사실상 받아들여진 것이다.

채널A 기자가 유력 검사로 지목된 한동훈 검사를 만나 나눈 대화가 실린 소위 ‘부산 녹취록’은 두 사람이 신라젠 사건의 정권 인사 관련 가능성에 공감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양측이 이 녹취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연루설에 구체적으로 동의한 바는 없다. 의혹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선 관계된 사람들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가 이뤄졌어야 하지만 사건이 이미 정파화 돼있는 상태여서 그럴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결국 이런 결론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이런 사태의 계기가 된 MBC의 보도에 대해 짚어봐야 한다. 보수언론과 한동훈 검사, 전직 채널A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MBC의 ‘함정취재’의 문제를 지적한다. 반면 MBC는 채널A 기자의 취재 방식을 문제 삼는 보도를 했을 뿐 ‘검언유착’이라는 사건 규정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바는 없다고 반론한다. 보도만 놓고 보면 그런 항변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보도를 가능하게 한 취재는 어떻게 이뤄졌느냐 하는 것이다.

이 사건 1심 판결은 지모 씨를 감옥의 이철 씨와 일면식도 없는 것에 가까웠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철 씨의 대리인’이라는 정체성은 상당히 과장돼있는 셈이다. 그간 언론은 이철 씨와 지모 씨를 연결한 주체로 이철 씨의 변호인을 지목해왔다. 이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은 여당 국회의원을 배출했기 때문에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은 ‘공작’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MBC가 여당 소속 국회의원이나 같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와 직접 연결됐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판결 내용에 비추어보면 지모 씨라는 취재원의 신뢰성 검증에 실패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러한 실패는 어디서 비롯됐는가? 지모 씨는 이미 검찰 문제를 다룬 MBC의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취재원으로 조력한 바 있다. 유사한 여러 주제에 걸쳐 동일한 취재원이 자꾸 등장한다면 의심을 해볼 법도 한데, 그런 흔적은 없다. 앞서의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관계가 정파적 편향으로 작용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지모 씨의 제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과정도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없다. 지모 씨가 채널A 기자와 유력 검사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미끼를 던진 현장엔 MBC 취재진도 함께 있었다. 지모 씨와 MBC 취재진 사이에 이 과정의 전후맥락에 대한 공감과 동의가 어느 정도로 형성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의 선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답변을 유도하기 위한 지모 씨의 행위를 방치하거나 여기에 동조한 후 그 결과만을 보도를 했다면, 이것만으로도 팩트를 발굴한 것을 넘어 생산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취재윤리의 문제를 비켜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안이함과 불철저함은 정파적 보도라는 비판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한겨레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별장 성접대’ 연루설을 보도하고 사과한 게 대표적 사례다. 한겨레는 19일 지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삼부토건 조남욱 전 회장의 ‘관리 대상’이었다는 의혹을 실었는데, 윤석열 전 총장 측은 앞서 오보의 사례를 들어 “악의적 오명을 씌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의 이전 오보 역시 취재원 주장 검증에 실패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최근 공수처는 이규원 검사의 건설업자 윤중천 씨 허위 면담보고서 작성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의 당시 보도는 이 보고서의 존재로부터 시작된 걸로 추정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장되었거나 허위에 가까운 보고서의 내용을 한겨레에 전달해준 인물도 정권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인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장의 검증에 실패한 것은 결국 ‘정파성’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당시 오보와는 달리 한겨레는 이번 보도에 조남욱 전 회장 비서실의 달력 일정표 등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조남욱 전 회장과 윤석열 전 총장이 알고 지냈고 서로 교류한 것은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조남욱 전 회장이 윤석열 전 총장을 ‘관리’했는지는 가령 골프 비용을 누가 냈는지, 전했다는 선물이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전 총장도 이 점에서 조남욱 전 회장과의 친분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접대’를 받거나 통상적 수준 이상의 선물을 받은 바는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대선에 출마할 것을 공식화 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검증 보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윤석열 전 총장 본인도 정치인은 무한 검증의 대상이고 근거를 갖춰서 제기하는 의혹이라면 거기에 충실히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윤석열 전 총장이 취재에 응하지도 않고 한겨레 보도의 근거를 “출처를 알 수 없는 일정표”로 표현한 것은 오히려 그러한 대응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한겨레의 앞서 오보는 이런 정치적 대응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뼈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검언유착’ 관련 논란으로 MBC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대로 인정하고 정리하는 게 오히려 매체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MBC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명확한 것 같다.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의혹에 대해 “안 밝혀질 것”이라며 MBC 보도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취향껏 골라 잡아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판결이 어떻게 나든, 그 얘기 그대로 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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