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한겨레가 현장 기자들의 성명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취해진 조치와 의견, 소회 등을 10일 자 지면에 게재했다.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은 10일 ‘말 거는 한겨레’ <‘기자 성명’, 그 뒤>에서 “현장 기자들의 요구는 권력 감시와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본령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검찰개혁’ 같은 대의를 앞세우다 이용구 법무 차관 관련 오보까지 내게 된 상황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일자 한겨레 오피니언 면에 실린 두 기사

지난달 26일 현장 기자들의 비판 성명이 나온 뒤 사회부장, 법조팀장이 연이어 사퇴하고 3일 내부 토론회가 열렸다. 독자와 언론 전문가로 이루어진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와 저널리즘책무위원회에서도 해당 사안이 논의됐다.

이봉현 실장에 따르면, 현장 기자들은 토론회에서 “특정 세력이나 집단 이익을 위해 사실을 일부러 누락하거나 외면하는 사례”가 있고 ‘우리편’을 비판하는 보도는 “팩트체크가 엄청 꼼꼼해지고 저쪽 편이라고 하면 느슨해”진다고 지적했다. 심석태 책무위원은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가 “한겨레가 추구하는 가치를 비판한 게 아니고 (…) 어떤 절차적 잘못이라든지 (…) 사실의 문제인데 왜 이런 것들을 엄밀히 다루지 못하는가에 대한 자성”이라고 평가했다.

임자운 열린편집위원은 “언론사가 관점을 갖지 않을 수는 없다. 그 관점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가져가는지가 문제”라며 “사실에 기반을 둬서 얼마나 취재를 열심히 했는지, 기사를 통해 설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봉우 실장은 언론사가 가치나 관점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기본 책무이고, 그 결과 ‘친정부적’이란 말을 듣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노동이나 사회정책, 검찰개혁 등의 방향에서 한겨레의 판단이 현 정권과 같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의 공정성이나 엄밀성은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에서는 특정한 세대의 경험이 공정한 판단을 가릴 위험성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가치와 지향이 비슷한 집단이 하는 잘못에 둔감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은연중 기사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대 정서는 공정한 언론을 위해 극복할 일이라는 지적이다. 배정근 책무위원은 “한겨레가 지향하는 가치가 있지만 그 가치를 (특정) 집단과 착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현장 기자와 데스크의 대면 기회가 줄어든 부분도 지적됐다. 생각 차이를 인정하고, 그 간격을 좁히는 시스템을 정교화·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러 토론자로부터 나왔다. 임석규 편집국장은 토론회에서 이런 시스템을 시급히 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겨레는 토론회 직후 소통데스크를 따로 발령내고 여러 단위별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실장은 이러한 내부 논의 사항을 전하며 “취재보도준칙을 일상의 보도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하는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며 “언론사에 갈등이 있다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제대로 논의해 발전의 계기로 삼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곽정수 논설위원도 오피니언 <‘성역 없는’ 한겨레>에서 현장 기자들의 “30년 동안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가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성명에 대해 “성명 취지는 한겨레가 그동안 견지해온 원칙과 다르지 않다”며 “이후 사내 토론회에서도 진실 추구와 권력에 대한 공정한 비판, 즉 ‘성역 없는 한겨레’가 중요하다는 데 대부분 공감했다”고 밝혔다.

곽 위원은 “한겨레 역사에서 권력과의 관계, 특히 진보세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느냐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며 “기자 개인별 인식의 차이, 세대 간의 경험 차이가 존재한다. 원칙에 동의해도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에서는 경중이 다를 수 있다. 요즘은 민주 대 반민주로 간단히 구분되는 시대도 아니다. 진보진영 안에서도 기득권 논란이 제기된다”고 했다. “현장기자와 데스크 간의 소통 부족은 항상 따라다닌다”고 덧붙였다.

해답은 ‘성역 없는 한겨레의 재확인’에 있다고 당부했다. 곽 위원은 “한겨레가 지향하는 민주적 가치를 지지하는 것과 세력을 옹호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며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지 않는다고 조중동을 비판하는 한겨레로서는 ‘내로남불’ ‘제 식구 봐주기’는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6일 한겨레 현장기자 41명은 자사의 법조 기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여지고 있다"며 현장 취재 기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구조에 대한 국장단, 사회부장, 법조팀장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2019년 9월 ‘조국 보도 참사’ 성명을 발표할 때와 견주어 달라진 게 없다”며 “지난 30년 동안 ‘성역’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추미애-윤석열 갈등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 폭행, 김학의 불법출국 금지 의혹 등은 다룬 자사 기사가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한겨레 기자들 "법조 기사,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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