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한국시리즈에서 SK와 맞붙은 두산의 김경문 감독은 문학에서 벌어진 원정 1, 2차전을 모두 쓸어 담으며 2연승으로 쾌조의 출발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홈인 잠실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9:1로 완패하자 1차전에서 선발승을 거둔 리오스를 4차전 선발로 예고했습니다. 3차전을 승리해 3승 1패로 우승에 코앞에 두며 최악의 경우 리오스를 7차전 선발로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일석이조를 노린 4차전 선발 예고였습니다. 게다가 SK의 4차전 선발 김광현은 입단 당시의 엄청난 기대에 못 미치는 페넌트 레이스 성적(3승 7패)에 그쳤기에 두산의 승리가 점쳐졌습니다.

하지만 3일 휴식 후 등판한 리오스는 1회초부터 실점한 반면 김광현은 예상을 뒤엎는 7.1이닝 무실점 호투로 4:0 완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김광현은 9탈삼진으로 신인 투수가 한국시리즈에서 기록한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에이스의 로테이션을 앞당겼다 패배한 두산은 내리 4연패로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SK에 우승을 내줬고 김광현은 이날 호투를 계기로 아마 시절의 명성에 걸맞은 리그 에이스로 발돋움한 바 있습니다.

▲ KIA 타이거즈 윤석민이 선발 등판해 3회초에 실점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은 선발 예고부터 2007 한국시리즈 4차전을 연상시켰습니다. 기아는 1차전 완승의 주인공 에이스 윤석민을 3일 휴식 후 선발 등판시키며 로테이션을 앞당겼고 SK는 포스트 시즌을 첫 경험하는 윤희상을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처럼 로테이션을 앞당긴 에이스는 무너졌고 경험이 일천해 기대를 받지 않은 투수는 무실점 호투로 완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4차전이 열린 광주 무등야구장에는 포스트 시즌 경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빈자리가 많았는데 3차전 완봉패와 윤석민의 이른 등판 예고로 4차전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임을 예견한 듯 보였습니다.

선취 득점의 기회는 기아에게도 있었습니다. 2회초 2사 1, 2루 위기를 벗어난 뒤 2회말 상대 실책에 편승해 무사 1, 3루의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무사 혹은 1사 3루서는 처음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가 타점을 올리지 못하고 물러날 경우 후속 타자들이 부담스러워해 득점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누차 지적한 바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무사 1, 3루에 등장한 안치홍은 떨어지는 유인구에 거푸 헛스윙하며 삼진으로 물러났고 기아는 결국 득점에 실패했습니다. 안치홍은 0-2의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도 3구 파울에 뒤이은 연속 헛스윙으로 삼진을 기록했는데 기아 타자들의 전반적인 타격감 침체를 상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기아 조범현 감독은 안치홍의 타격감이 좋지 않아 스퀴즈까지 염두에 뒀을 법하지만 경기 초반인데다 3차전 2회말 무사 1, 2루에서 안치홍이 희생 번트를 시도하다 포수 앞 병살타로 물러났던 상황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1점 짜내기로는 윤석민이 SK 타선을 막아내기 어렵다는 판단 또한 더해졌을 것입니다. 기아 타선은 이후 3회말과 6회말에도 득점권 기회를 얻었으나 끝내 1점도 뽑지 못하며 24이닝 연속 무득점이라는 치욕과 함께 탈락했습니다.

2회말 기회를 동료들이 무산시키자마자 3회초에 윤석민은 난타당하며 무너졌습니다. 윤석민은 1차전에서 ‘마구’라 불린 슬라이더의 사용 빈도를 줄이며 대신 체인지업을 많이 활용했는데 지난 경기에서 물집이 잡힌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공 배합을 바꾸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인구는 지나치게 낮게 제구되어 SK 타자들의 방망이를 끌어내지 못했고 스트라이크는 높게 형성되며 무너졌습니다. 특히 3차전까지 12타수 무안타의 극심한 부진에 허덕이던 최정을 상대로 3회초 1사 1, 2루에서 0-2의 불리한 카운트에 몰린 뒤 3구 한복판 직구 실투로 2타점 좌월 2루타를 허용했습니다. 이어 박정권에게도 적시 2루타를 허용한 뒤 3:0으로 벌어지자 윤석민은 강판되었는데 오늘 경기는 윤석민의 강판으로 사실상 끝났습니다. 윤석민의 3일 휴식 후 선발 등판은 조범현 감독의 조급증이 낳은 자충수로 결론지어졌습니다.

전반기를 1위로 마감했지만 후반기에 부상 선수가 속출하며 기아는 4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후반기 내내 지속된 부진한 분위기를 준플레이오프에서 일신하지 못해 패퇴했습니다. 예상 외로 극도로 부진했던 타선 침묵이 탈락의 근본 원인입니다.

▲ 5회초 2, 3루 SK 3번 최정이 1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SK는 3차전까지 부진했던 최정이 3회초 적시타로 물꼬를 트자 이후 8회초까지 테이블 세터가 타순이 돌아올 때마다 득점에 성공하며 대승을 거뒀습니다. 박진만과 정상호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주전 타자들이 타격감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게다가 김광현을 다시 등판시키지 않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3일 간의 휴식을 취하기에 연투했던 필승 계투조도 숨통을 트게 되었습니다. 롯데로서는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치닫기를 원했겠지만 큰 경기에 강한 SK가 1패 뒤 3연승으로 분위기가 살아난 데다 3일간의 휴식으로 투수진까지 온존하게 되어 상당히 부담스러워졌습니다.

흥미롭게도 조범현 감독의 기아가 탈락하며 플레이오프와 한국 시리즈 모두 초보 감독 간의 대결로 압축되었습니다. 우승의 영광은 세 사람의 초보 감독 중 한 명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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