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심장이 쿵딱쿵딱 쿵따닥 쿵딱 뛰기 시작한다. 나름 용기 있게 소신 있게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뜨거우며, 가장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참 작고 소소한 비판을 하려고 하니, 나의 담력도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두려움에 다리를 떨면서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 또 도리이니, 쓰련다. 까이꺼. 욕먹으면 장수하면 된다.

며칠 전 '나는 가수다가 가요계를 살리고 있다' 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가요계'를 망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동전에는 앞뒷면이 있고, 모든 좋은 일에는 어두운 그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나는 가수다'가 가진 그늘을 조명하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음을 앞서 밝힌다.

'임재범'의 노래를 방송에서 들을 수 있고, '이소라'의 감정을 전달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기획됐을 당시만 해도 이런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너무나 협소했다. 주말 밤 늦게 방송되는 극소수 음악 방송들만이 들을 만한 음악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처럼 밤낮 없는 막생활을 하는 사람이야 그런 방송을 볼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일반 국민들이 야밤까지 기다려서 그런 프로그램을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대한민국 가요계는 아이돌 판이 되었다. 다른 다양한 음악들이 '인기'가 없어서 들을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들을 수 없어서' 인기가 없었던 것이 당시의 환경이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가수다'는 진정한 가수들이 여러 청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그것도 황금 같은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가지고 진정으로 음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까지는 참 좋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가수를 가창력으로만 평가하는 잣대가 생겨 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가수다'가 '아이유'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사람들은 '아이유는 노래를 잘하지만 아직 여기에 끼기는 모자르다'라고 평을 내렸다. 아이돌 형태에 가까운 '아이유'는 그렇다 치자. 사람들은 '성시경, 임정희, 옥주현 등' 그래도 노래 좀 부른다 하는 가수들에게도 과감하게 '너희들은 낄 수준'이 아니라고 평을 내린다. 사람들이 가수들의 레벨을 정하고 그 가치와 수준을 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참여하고 있는 가수들의 수준은 정말 높다. 인정한다. 끝판왕이라 칭해지는 호랑이 창법의 임재범이 있는데 뭐 할 말 다한 거 아니겠나? 그리고 이 가수들이 순위를 매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다른 가수들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이 습관화될 수 있다. 원래 이런 게 참 재밌다. 줄 세우기.

그러나 '나는 가수다'가 취한 순위제는 말 그대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예능'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가요계는 정말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나에게 최고의 노래는 물론 이소라의 것들이었다. '바람이 분다', 'track 08' 등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들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내 감성을 가장 많이 만져준 노래는 더 있다.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와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 장재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넬의 'stay' 등이 내 감성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 노래들은 때때로 나를 울게 해준다.

이들의 가창력을 따지자면 분명 '나는 가수다'에 있는 분들보다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이 내게 준 감동은 '나는 가수다'의 감동에 못지않다. 아니 어쩌면 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가수들이 '순위'가 매겨져서 마치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보다 못하고 떨어지는 가수가 되어 버린다면? 나는 나의 음악적 취향을 마음껏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윤종신 좋아해.'
'야 괜찮긴 한데, 그래도 임재범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지 뭐.'

내 감성이 움직였다는데 왜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그런데 지금 이런 일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순위를 매기고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저 느낄 대상일 뿐이다. 그것을 규격화하고 점수화하고 순위화한다면 문화가 가진 다양성은 또 다시 위협을 받게 된다. 음악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인 가창력이 유일한 평가 잣대가 되어, 가창력이 조금 부족한 가수들의 음악은 수준이 떨어지는 음악으로 평가되어 버릴 수 있다. 내가 감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면 내 감성도 수준 떨어지는 것으로 폄하될지 모른다. 아마 줏대 없는 나는 바로 이렇게 대꾸할 것이다.

'하긴 윤종신보다는 임재범의 노래가 최고지.'

'나는 가수다'는 분명 가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고,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전해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즐기면 된다. 섣불리 가수를 평가하고 문화에 순위를 매기지 않고 그저 전해주는 문화를 마음으로 나누면 되는 것이다. 그저 즐기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는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며 대한민국의 가요계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아, 마지막으로 임재범 씨가 한 말이 기억난다.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던 것 말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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