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9일, 오늘로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유투권)가 투쟁을 시작한 지 600일이 됐다.

지난 600일 동안, YTN 안팎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사장이 바뀌었고, 노조의 투쟁 명칭이 바뀌었고, 노조 집행부가 바뀌었다. ‘낙하산 사장’으로 YTN 안팎에서 사퇴 요구를 받던 구본홍 당시 사장이 갑작스럽게 사퇴한 뒤, 배석규 전무가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에 지난 2008년 7월17일부터 시작됐던 ‘구본홍 반대 투쟁’은 ‘공정방송 쟁취 투쟁’으로 바뀌었다. 이 뿐이 아니다. 해직자 중심의 노조 집행부도 유투권 지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집행부로 바뀌었다.

출근 저지 투쟁, 인사 불복종 투쟁과 제작 투쟁, 공정방송 배지·리본 패용 투쟁, 생방송 중 ‘손팻말 시위’ 강행, 단식 투쟁, 블랙 투쟁, 가면 출근 투쟁…. 치열했던 투쟁이 낳은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 YTN노조의 견고한 투쟁은 언론계 뿐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지만, 과정에서 노조원들은 수없이 많은 징계를 당했다. ‘기자 6명 해직’이라는 유례없는 징계도 이어졌다. 또 형사 고소를 당하기도 했고,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으며, 특히 노종면 전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원 4명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긴급체포 되기도 했다.

배석규 사장 체제로 들어서고, 노조 집행부가 바뀐 지금 시점에서 많은 이들은 YTN사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잠잠하기 때문이다. 투쟁 초반, 반짝했던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져, 요즘은 YTN 관련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없다. 하지만 YTN노조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해결되지 않은 해직자 문제를 비롯해 ‘공정방송’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위기감은 여전하다. 노사 관계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 2008년 9월16일 YTN <뉴스의 현장> 생방송 도중 YTN지부가 '공정방송 투쟁'을 알리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송선영
◇ 현재 YTN의 상황은?

김백 보도국장, 홍상표 경영기획실장 사내이사 추천

YTN은 지난 2월25일 이사회를 열어 김백 보도국장과 홍상표 경영기획실장을 사내이사로 추천했다. 이에 YTN노조는 김 국장과 홍 실장이 노사 관계를 악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는 이유에서 사내이사 추천을 문제 삼고 나섰다. 또 배석규 사장이 이번 이사 선임을 계기로 향후 인사를 통해 친위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며 사내이사 추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YTN노조는 성명을 통해 “김백 국장은 재작년부터 인사위원회를 통해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징계를 자행한 당사자”라며 “보도국장이 된 뒤에는 2차례에 걸친 보복성 지국 발령을 주도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홍상표 실장과 관련해서도 “보도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돌발영상> 삭제 건 등으로 YTN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먹칠을 하고 결국 제 발로 물러났던 인사”라며 “이런 사람이 YTN의 임원이 된다는 것은 공정방송에 대한 사실상 사형선고”라고 밝혔다.

YTN은 오는 3월19일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 추천 안건을 통과시킬 계획이며, 주주총회에서 이들의 구체적인 보직을 확정할 예정이다.

공정방송위원회 소집 요구, 불응

현재 YTN은 노조의 공정방송위원회 소집 요구에 수개월 째 응하지 않고 있다. 배석규 사장이 들어선 뒤 한 번도 공정방송위원회가 열리지 못했다. 이에 YTN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간사 박희천)는 회사 쪽에 공정방송위원회를 열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있으며,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논의되지 못한 부분을 보고서 형태로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YTN은 공정방송위원회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사장의 공정방송 실현 책무 등을 명시한 ‘공정방송을 위한 YTN노사 협약’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YTN이 공정방송 협약 개정을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협약이 체결될 당시 보도국장 임명제도가 3배수 추천제로 운영된 것에 반해, 현재는 임명제로 바뀌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사측에서 제시한 공정방송 협약 개정안을 보면, 협약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개정을 요구하고 있어 이대로 된다면 공방위를 아예 열 수 없게 된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 YTN노사는 공정방송 협약 개정을 위한 TF팀을 꾸려 일주일에 한번 씩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 2008년 10월8일 YTN <뉴스Q> 앵커들이 '블랙투쟁'을 하고 있다.
◇ 600일의 투쟁, 얻은 것과 잃은 것

유투권 지부장은 낙하산 사장을 저지한 것과 공정방송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 것을 투쟁의 성과로 꼽았다.

그는 “우여곡절은 있지만 어쨌든 낙하산 구본홍씨를 최종적으로 막았던 부분은 투쟁의 결과임은 분명한 것 같고, 과제로 남겨진 부분이긴 하지만 공정방송 협약을 어떤 회사보다도 강력하게 제도상 만들어놓은 부분도 가시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내부적으로는 공정방송의 가치나 중요성, 의미를 서로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였다”며 “이전에는 공정방송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기회가 부족했는데 투쟁을 하면서 새롭게 생각을 다져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투쟁 과정에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 유 지부장은 “동료 6명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직자들은 해고 무효 소송 1심 판결 결과, ‘노조원들에 대한 해고가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아직 복직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YTN은 법원 판결에 항소를 했다.

그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동료 6명에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이것이 투쟁 과정에서 생긴 상처”라고 말했다. 이어 “투쟁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도 있지만, 간부들이 우리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공정방송에 위배되는 행동들을 하면서 보직 간부와의 갈등, 선후배의 갈등이 분명히 있었고 상처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회사 쪽과 대화의 진전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먹통”이라는 단어로 현재의 상황을 표현했다. 그는 “대화가 풀리는 부분은 없다.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진전이 없다”며 “인내를 갖고 어떤 식으로든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풀기위해 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 2009년 10월12일 오전 8시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층 후문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날치기 사장 선임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YTN노조
박희천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도 “낙하산 사장을 거부한 명분은 단순히 ‘낙하산 사장이라서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올 경우 공정방송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며 “투쟁 이전에도 공정방송에 대해 간혹 고민을 했겠지만, 공정방송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것은 이게 처음이지 않았나 싶다. 기자들이 공정방송의 당위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현재 YTN 보도는 어떨까?

박희천 간사는 “YTN 각 구성원들의 공정방송 의지, 의식은 높아졌는데 투쟁 과정에서 보도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간부들은 오히려 일반 기자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정치 관련 보도에서 집권층, 청와대의 눈치를 많이 보고,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것이 있다면 회피하는 등 오히려 정당한 비판이 사라지고 있어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에 대한 구성원들의 문제 의식은 크지만 굉장히 미흡한 부분 많다”며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는데 정치, 사회 관련 보도에서는 갈수록 실망스러운 기사들이 많아 노조원들이 분노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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