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실종돼 공개수배가 진행됐던 여중생 이모(13세)양이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이 사건을 지켜보던 국민들을 무엇보다 안타깝게 한 사실은 그가 발견된 곳이 이 양의 집에서 50m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유력한 용의자로 알려진 김길태(33세)씨 역시 사건이 벌어진 이후 8일간 이양의 집에서 50m도 안 되는 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동 실종 및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 이후 언제나처럼 지적돼 왔던 경찰수사의 허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초동수사의 실패와 정밀수사가 되지 못한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 수사에 경찰 2만여 명이 투입됐다는 점 등에서 경찰수사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조선일보> “전자발찌만 있었다면…” 기사의 의도는?

이런 와중에 <조선일보>는 8일자 1면에서 ‘전자발찌만 있었다면 소녀는 지금 중학생이 됐을 것이다’라는 기사를 통해 허술한 성범죄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왔다. <조선일보>는 경찰의 말을 인용해 “김길태는 전자발찌법이 시행된 2008년 9월 이전에 수감됐고 만기출소자였기 때문에 전자발찌를 채우는 특별관리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강조했다.

▲ 3월 8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이 같은 <조선일보> 기사와 관련해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조선일보>에서 ‘전자발찌’를 1면에 실은 것은 그것을 핵심 이슈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라고 풀이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그 위력을 대단히 과대평가한 ‘전자발찌’의 효과는 있는 것일까?

<노컷뉴스>, 너무 쉽게 끊기는 전자발찌…사실상 ‘무용지물’

▲ 2009년 11월 17일자 '노컷뉴스' 기사
멀지도 않다. 지난해 11월 달 <노컷뉴스> ‘너무 쉽게 끊기는 전자발찌…사실상 ‘무용지물’’ 기사다.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지난 4월부터 보호관찰을 받고 있던 김모(40) 씨가 위치추적 전자장치, 이른바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건 지난 달 30일 오전 10시27분경. 대부분 성폭력 범죄자인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중앙관제센터는 바로 전자발찌의 훼손 사실을 알고 김 씨의 주거지 관할인 의정부보호관찰소에 연락해 현장에 출동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보호관찰관이 전자발찌의 전파신호가 끊긴 서울 지하철 1호선 방학역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40분. 김 씨는 역사 내 휴지통에 전자발찌를 버리고 유유히 달아난 뒤였다.”

노컷뉴스는 이어 “성범죄 재발을 막기 위해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됐지만 1년 사이 발찌를 끊고 달아나는 사례가 5건이나 발생”, “전자발찌가 너무 쉽게 끊기는데다 관찰기관에서 현장에 도착하는 데까지 수십 분이 걸리고,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도주했던 김 씨는 102일 만에 다시 붙잡혔다. 당시 그는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것과 관련해 “혼자 돌아다니려는데 전자발찌가 있으면 위치가 탄로 나고 답답해서 끊어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 ‘전자발찌찬 성범죄자 또 성범죄’

▲ 2008년 11월 7일자 경향신문
또 다른 2008년 11월 7일자 <경향신문>의 ‘전자발찌찬 성범죄자 또 성범죄’ 기사를 보자.

경향신문은 “경북 상주경찰서는 6일 다방에 커피를 시킨 뒤 배달 온 여종업원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뺏은 혐의(강도강간)로 배모씨(29·무직)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배씨는 2003년 1월 이번 범행장소 인근에서 비슷한 범행을 저질러 징역6년을 선고받고 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 지난 9월30일 전자발찌를 찬 채 가석방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 <노컷뉴스>와 <경향신문>의 기사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전자발찌’는 성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자발찌’, 국가 책임 회피용으로 도입 및 확대되고 있어

명숙 활동가는 또한 “전자발찌는 A라는 사람이 사건장소 B를 지나갔는지 확인만 해주는 것”이라면서 “만약 전자발찌를 찬 사람이 우연히 사건장소 B를 지나갔다면 잠정적 범죄자가 되어 이미 처벌을 받은 상태에서 이중처벌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범죄는 ‘전자발찌’ 등의 국가 형벌권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성범죄는 한 국가의 문화질서나 인권의식의 문제로 가부장적 성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예방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자발찌’는 성범죄에 대한 국가책임의 면피용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국가는 뭐했는데?’라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그 책임에 대한 회피수단으로 국가형벌권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는 고위층에서 근본적으로 가부장적 국가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특정범죄와 특정인물의 범죄만이 있는 것인 양 그들에게만 책임을 물으려는 자세”라고 비판했다. 이어 “청와대 사무관 등의 성접대 파문 등의 고위층의 성문화가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이 이에 속한다”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전자발찌만 있었다면 소녀는 지금 중학생이 됐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만약 유력 용의자 김길태 씨에게 전자발찌를 채웠었고 또한 사건 당시에도 전자발찌를 하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과연 국가는 이 양의 납치 및 성폭력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인가. 때문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이 무얼 했느냐가 아니라 '이' 사건이 있기 전부터 국가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고 말이다.

또한 근본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국가형벌만을 키우라는 <조선일보>. 이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 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고위층에 속하기 때문? 혹은 ‘성’에 대한 범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얼마 전 7일은 고 장자연 씨의 사망 1주기였다) 어떤 이유에서였건 명백한 것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조선일보>는 핵심을 비껴가고 있으며 또한 그 핵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명숙 활동가는 “오히려 문제는 그동안 정부가 민생치안에 인력을 확충하기보다는 집회나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 등을 수사하는 시국치안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는 것”이라면서 “<조선일보>가 그에 대한 지적 없이 ‘전자발찌’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선정적 기사”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에는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카페의 총무 집을 압수수색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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