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사람들 족족 손에 무언가를 가득 든 채 고향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서울역에서 운행하는 열차 정보를 알리는 전광판에 ‘매진’ 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보인다. 새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은행은 북적인다. 언론에서는 연일 ‘민족 대이동’을 강조하며, 실시간 교통 상황을 전한다. 대통령도 ‘친히’ 시장을 찾아 한껏 명절 분위기를 낸다.

설날이 왔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고향으로 향했건만, 정작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밀려드는 ‘허무감’을 채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손을 뻗아 TV 리모콘을 잡는다. 이리 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신선한’ 프로그램은 없다. ‘팔도모창대회’ ‘연예인 씨름대회’ ‘톱스타 X파일’ ‘NG열전’ ‘댄스 대격돌’ 등은 이제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이 전개될 지 눈에 훤히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 명절 때마다 봐 오던 익숙한 패턴의 ‘진부한’ 프로그램은 이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설 특집 프로그램을 오로지 100% 나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신선함’ 또는 ‘진부함’으로 분류했다. 새해가 되면 달력을 펼쳐놓고 빨간날(쉬는 날)을 세어보는 정도의 센스를 발휘해 각 방송사들이 어떤 특집 TV 프로그램을 편성했는지 알기 위해 방송사 홈페이지를 수없이 뒤적거렸다.

‘신선함’, 연예인 20명 VS 연예부 기자 20명

▲ 2월14일 밤 11시10분에 방송되는 SBS 설특집 '용구라환의 빅매치' ⓒSBS

오는 14일 밤 11시10분에 방송되는 SBS 설특집 <용구라환의 빅매치>는 기존 설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이 돋보인다. 연예 매체들이 쏟아내는 기사에 대해 “지나치게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보도한다” “추측성 기사를 남발한다” “선정적이다”를 비롯한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기자와 취재원 이 두 집단 사이에 얽힌 미묘한 감정들을 전하려는 시도 자체는 흥미롭다.

연예인 20명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하는 연예부 기자 20명이 방송 사상 최초로 한 자리에 모였다. 연예인들은 ‘연예인을 홧병 나게 했던 기사’를 뽑아 기사 때문에 힘들었던 사연을 폭로하는가 하면, 기자들은 ‘기자가 폭로하는 연예인의 가식’을 밝힌다.

이 자리에서 연예인들은 기자들을 향해 “당사자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기사를 쓴다”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에 기자들은 “사건사고가 나면 기자를 피하기 때문에 추측성 보도가 날 수밖에 없다”고 되받아치기도 한다.

K군, H군 등 이니셜의 주인공을 파해 치거나, 지나치게 연예인들의 사생활에만 집중한 채 방송이 나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수도 없이 쏟아지는 연예 기사들에 대해 기사의 주인공인 연예인들 그들이 직접 말하는 기사와 기자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설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접할 수 없었던 ‘신선함’이 느껴진다.

부디 기존 연예 매체들이 쏟아냈던 기사를 통해 엿보았던 ‘황색 저널리즘’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확인하지 않기를, 무분별한 기사를 쏟아내는 연예부 기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연예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진부함’, 작년에도 보고 올 해 또 보는 X파일

▲ 2월15일 밤 7시10분 방송되는 KBS '2010 빅스타 X파일' ⓒKBS
오는 15일 밤 7시10분 방송되는 KBS <2010 빅스타 X파일>. KBS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어느새 명절 연휴 KBS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고 표현했다. 명절 때마다 방송하는 것으로 보아, 대표 프로그램이 된 것 같기는 하나 KBS의 표현대로 ‘더욱 재밌고 알찬 내용들로 가득’한지는 알 수 없다.

<2010 빅스타 X파일>은 <추노> <공부의 신>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에 대한 밀착 취재를 통해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화재의 촬영 현장을 공개한다. 또 <아이리스> <공부의 신> <추노> 등 KBS 드라마에서 활약한 주인공들의 데뷔시절 모습을 전한다. 이 뿐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 <남자의 자격>, <천하무적 야구단>, <청춘불패> 속 캐릭터들을 비교하며, 드라마와 영화 속 명장면, 명대사들을 전한다.

각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을 무한 갖고 있는 이들에게 기존에 공개되지 않은 촬영 현장, 명장면, 명대사 등은 가뭄에 단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째 계속 이어지는 똑같은 패턴이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없다. 기존 방송된 프로그램의 특징을 전하거나, 공개되지 않은 영상을 전하는 것은 굳이 설 특집 프로그램이 아닌 <연예가중계>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KBS 프로그램으로 한정해 전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의 X파일 까지도 함께 전하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하다.

명절을 앞두고 각 방송사의 편성국은 바삐 움직인다고 한다. 다른 방송사보다 좋은 시청률을 얻기 위해 특집 프로그램을 배치하기도 하고, 기존 방송을 통해 접할 수 없었던 독특하고 새로운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어려운 제작 여건을 감안해 새 프로그램을 만드는 대신 고도의 편집 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영상을 재편성, 프로그램을 ‘뚝딱’ 만들어내기도 한다. 설 명절을 즐기는 시청자들에게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눈물을 전해주는 그 모든 손길의 수고로움 위에 감사를 표한다. 그러니 부디 나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분류에 노여워하지 마시길.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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