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지난 2월 2일과 3일, 양일간 ‘노동운동의 2010 체제’라는 기획특집을 보도했다. 6개의 특집 기사를 통해 조선일보 시각으로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기사는 전체적으로 구시대적 노동운동이라고 민주노총의 노동운동을 평가절하하면서 합리적이고 상생적인 새로운 노동운동을 ‘2010 체제’라고 묘사했다. 조선일보가 기획 특집 면을 통해 노동운동을 어떻게 프레임하고 보도하고 있는지 관련 기사를 살펴보았다.

민주노총은 구(舊)체제’의 사령 본부?

조선일보는 이번 기획특집 기사에서 민주노총을 ‘87년 체제’로 규정하면서 ‘구시대적인 사고와 운동방식’, '불법', '폭력', '강성 투쟁' 등으로 부정적, 악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2월2일<현대중공업 노조 “전임자 3분의 1 줄이겠다”>
‘구(舊)체제’의 사령 본부인 민노총은 여전히 ‘1987년 노동운동’을 고수할 뜻을 밝히고 있으나 민노총이 총파업과 강경투쟁을 성사시킨 여량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부에서조차 회의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한국의 노동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민주노총은 노동법 개악 저지, 노동조건 개선 및 노동기본권 보장, 노동시장 유연화 저지 및 고용안정 확보, 비정규노동자 권리보장 등 전체 노동계급의 계급이익을 대변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반대, 국유기업 사유화 저지, 기간산업 해외매각 반대 등 한국사회의 경제발전 모델 정립에 기여했다.

노조전임자들은 몰려다니면서 정치파업만 벌이고?

노조 전임자는 기업단위 노조활동이 작업장 통제를 중심으로 현장에서 조직적인 근거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어왔던 제도이다. 특히, 사업장 단위의 노조전임자는 단체교섭, 노사협의회, 고충처리, 노조의 일상 활동 등을 통해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의 영향력, 사업장 통제력을 발휘하는 노동운동의 핵심적 근거지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노조전임자와 노조 활동 전체를 왜곡하고 있다.

조선일보, 2월2일<“선진국 수준 도약 위한 노사문화의 마지막 진통”>,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완전히 금지하진 못했지만 일단 최소한의 규제 장치를 만들었기 때문에 수백 명의 노조전임자들이 몰려다니며 정치파업을 벌이고 다른 사업장에 원조투쟁을 벌이는 것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내년 하반기에 복수 노조가 허용되면 그동안 각종 정파와 파벌의 이해관계로 뒤엉켜있던 노조활동도 조합원을 주인으로 섬기는 노동운동으로 정상화돼야 할 것이다.

임성규 전 민노총 위원장 인터뷰 왜곡 보도

조선일보는 임성규 전 민노총 위원장의 인터뷰를 인용해 사실관계를 왜곡한다. 2월 2일 <“선진국 수준 도약 위한 노사문화의 마지막 진통”>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87년 체제를 주도해온 민노총 내부에서조차 이대로 간다면 “하루아침에 망할 것이고 그 시점은 2010년이 될 것”(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발언의 요지는 기사와 다르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인터넷 매체인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민노총도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그 이유로 복수 노조·전임자문제, 진보 정당 분열에 따른 민노총 내부 정파 싸움 등을 들었다. 하지만 기사는 마치 임 위원장이 민노총의 현 운동방식 때문에 민노총이 망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노동운동 ‘2010’ 체제’ 프레임을 강조하는 의도는?

프레임(frame)이란 뉴스 생산자들이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임과 동시에 그 사건을 하나의 의미체로 수용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논리이다. 조선일보는 ‘2010체제’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하면서 ‘2010 체제’를 새로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으로 ‘틀짓기(Frame)’에 나섰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새로운 노동운동 ‘2010 체제’는 합리적 노동운동을 기본으로 상생의 노사관계를 표방한다. 그러면서 ‘신ㆍ구 체제 비교’라는 제목의 표를 사용해 87년 체제와 2010년 체제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 조선일보 2월2일 '노조 게시판엔 투쟁 구호 대신 개선 아이디어' 최현묵 기자

조선일보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중심이었다던 ‘87년 체제’를 부정적, 악의적으로 묘사하고 이와 반대로 새로운 노동운동, ‘2010년 체제’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2월3일 <사회공헌엔 조합비 年 10억…노숙자 위해 봉사>기사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87년 체제’는 민주화와 더불어 폭발적으로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으로 탄생한 노동운동을 말한다. 분배를 강조하고 강성 투쟁으로 특징 지워지는 ‘1987년 체제’는 고용 창출과 노사 상생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합리적 노동 운동이 주도하는 ‘2010년 체제’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노동운동과 전혀 다른 새로운 2010년 체제의 탄생을 설명하기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노동운동 흐름을 비교를 하려면 당시 노동 환경에 대한 비교가 전제되어야 하며, 노사관계가 과거와 또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대한 비교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1987년 체제와 2010년 체제로 억지스럽게 구분하고 더욱이 민주노총을 “구(舊)체제’의 사령 본부”로 그리고 “1987년 노동운동”방식 고수로 범주화 시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여 진다. 비록 조선일보가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2010체제를 주도할 단체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아니라 제3노총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데 그 해답이 숨어있지 않을까 한다.

제3노총에 대한 긍정적 묘사

조선일보에 따르면 ‘제3노총’은 서울지하철노조 등 기존의 민주노총 탈퇴 조직과 삼성 등 무노조 기업에서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은 ‘추진위원회’ 조차 꾸려지지 않은 실체 없는 조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제3노총을 ‘2010체제’의 핵심적인 노동운동조직으로 평가하면서 ‘2010 체제’라는 새로운 용어와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제3노총을 띄워주기에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 2월3일<합리적 노동운동 표방, 제3노총 삼성ㆍ포스코에도 조직확대 나서>, 최현묵 기사
한국노총ㆍ민주노총의 양대 노총 체제와는 별개의 합리적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제3노총 그룹이 내년 하반기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삼성ㆍ포스코에 조직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 ’제3노총‘ 추진의 중심인물은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한국의 노동운동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현황 데이터 교묘히 악용

조선일보는 2월2일 <노조 게시판엔 투쟁 구호 대신 개선 아이디어>기사에서도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데이터를 첨부하고 있다. 2009년 파업 현황이라는 자료와 연도별 파업 건수에 대한 자료다. 데이터를 보면 2009년 총 파업 중에서 민주노총 소속의 노조의 파업이 전체의 92.6%를 차지한다. 이는 전체 파업 중에서 민노총 소속 노조의 파업 비율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 조선일보 2월2일 '노조 게시판엔 투쟁 구호 대신 개선 아이디어' 최현묵 기자

▲ 자료 출처 : 노동부
그러나 파업을 이야기할 때 먼저 파업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파업은 노동조합이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벌이고, 타결이 안 될 경우 쟁의행위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도록 헌법과 노사관계 법률로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파업 여부나 횟수만으로 어떤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순히 파업 여부나 횟수보다는 파업의 원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기사는 데이터는 파업 건수와 현황만 제시한 후 파업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자료는 일부로 누락시킨 듯하다. 아마도 민주노총 파업의 대부분이 합법파업이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을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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