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녕, 영혼은 불안에 잠식당하고 부담으로 진영은 분열되는 시간은 오고 있는 것일까?

2.
아직 언제일지도 모를 종합편성채널 허가를 앞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고로 카르텔(Kartell)의 붕괴란 미묘한 것이어서 처음엔 아주 작은 차이였던 것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법이다.

3.
동아일보는 애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를 싸잡고 있지만, 천부당하다. “일부 신문이 이 정권의 세종시 원안 수정을 옹호하고 선동하기에 바쁘다”고 일갈한 이회창 총재 발언의 오리지널리티는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이었다. ''방송허가' 빌미로 정치게임 말라'던 그 글의 요지는 "신문사들이 허가권을 쥔 이명박 정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정부 비판기사를 자제하고 있다는 말"들에 관한 자기 고백이었다.

4.
상황은 간명한 것이다. 조선일보 김대중인 누구인가? 그 이름만으로 조중동 카르텔을 쩌렁하게 울리는 대표선수이다. 그런 그가 분명히 했다. 모종의 게임이 조선일보에 말을 걸고 있다고. 우리는 이 게임을 피할 수 없지만, 실상 두렵고 짜증난다고. "실컷 ‘재미’를 본 뒤에 처리"당하는 것은 아닐까 말이다.

▲ 조선일보 11월13일 '김대중 칼럼'

5.
김대중이 재래 매체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정치를 해온 이회창 총재는 이 말을 받아 “종편(종합편성채널)이 일부 신문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고 전했을 뿐이다. 그의 견해라기 보단 조선일보의 논리를 정치인이 각색하여 다시 읊는 하나의 전형적 수사였다. 그런데, 이걸 두고 동아일보는 뭐가 섬뜩했는지 "우리는 결코 정부의 노예도, 종편의 노예도 아니다"는 이승복 어린이스러운 절규를 하고 말았다.

6.
기괴한 일이다. 조선일보의 김대중은 자신들의 처지가 흡사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고 성토하는데, 동아일보는 노예의 노자도 꺼내들지 말라고 치받고 있다. 이 간극의 행간은 현재의 정국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조중동이 '이명박을 사랑한 오타쿠'의 연합처럼 굴고 있지만, 그 애정의 깊이와 밀도는 종편의 실체가 드러나는 속도와 비례하여 옅어질 것이다.

7.
지금은 영혼이 불안에 잠식당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성숙한 조선일보는 상황을 직시하며 동아줄이라고 잡은 것이 실은 포승줄이었다고 자조하기 시작했다. 조중동 카르텔이 고스란히 방송으로 옮아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행여나 조선일보가 방송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이명박 정부의 숨통을 죄여 들어가는 조선일보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8.
반면, 유분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천치처럼 나대기만 하는 동아일보는 나는 죽어도 아니라는 아무 의미 없는 생떼를 쓰고 있다. 이회창 총재의 발언을 언론모독에 빗대며 애꿎게도 민주당까지 끌어들이는 관습적인 악다구니도 그렇거니와 "장기적 국가 이익과 대다수 국민 이익, 즉 총체적 국익(國益)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자기 환상을 버젓이 고백하는 것도 괘면 쩍은 일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나도 방송을 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이 훨씬 진솔한 작전일 테지만, 동아일보는 그걸 할 수 없다. 아예, 그런 윤리적인 방법으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다.

9.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의 속성을 누구보다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언론의 입장에선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게다가 자칫 그 패배의 덤터기를 쓸 경우 매체의 생존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초래된다고 생각하면 더욱 끔찍할 테다. 그래서 미묘하게 붕괴하기 시작한 조중동 카르텔을 보며, 앞으로 6개월 간 벌어질 극성스런 일들이 벌써부터 심란하다. 당장, 오늘만 보더라도 조중동은 도곡동 땅을 혼인빙자간음에 묻어 버렸다.

10.
신문과 방송의 겸업을 허하기로 했는데, '내가 방송을 갖을 수 없다'면의 불안, 그리고 그건 곧 '매체 경쟁력 자체에 대한 사망 판정'이 될 것이란 부담. 아직, 실체가 판명되지 않는 무엇을 향해 어쩌면 이제 서로를 물어뜯어야 할지도 모를, 개와 늑대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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