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를 하루 앞둔 17일, 빈궁이 건넨 탕약을 마시고 쓰러진 세자 때문에 시청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이대로 세자가 죽는 슬픈 결말로 마지막을 기억하기 싫은 소박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역사대로라면 세자는 죽었어야 하지만 드라마는 그 역사를 비틀었다. 사실대로면 다큐일 것이니 드라마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효명세자가 급서하지 않고 살아 왕위를 이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서 잘됐다고 말하고 싶다.

갑자기 쓰러졌다가 빠른 회복을 보인 세자 이영은 못다 한 일들을 일사천리로 처리해갔다. 영은 옹주가 기억해낸 서찰을 찾음으로써 중전을 시해한 김헌 등을 처단하고, 신분을 속여 내명부에 들어온 중전 역시 폐서인이 되어 쫓겨났다. 그리고 홍라온은 모든 죄를 사면했다. 이만하면 춘향이를 구해낸 이몽룡의 암행어사 출두보다 더한 후련한 결말이다.

KBS 2TV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그러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의 인기라면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효명세자의 일대기를 공부했을 것이고, 왜 이토록 영민하고 정의로운 세자가 22살의 어린 나이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할 것이다.

이 드라마가 효명세자 시기의 조정 상황을 아주 신랄하게 그려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마 멜로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을 정도의 수위는 지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소한 효명세자를 춘앵전을 만든 효성 깊은 세자 정도로만 기억되게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드라마 한 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덕분에 효명세자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박보검을 사랑한 만큼 효명세자에 관심을 가졌을 우리들이기에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좀 더 효명세자의 한, 조선의 비극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을 것 같다.

KBS 2TV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드라마에서도 그려진 것처럼 당시의 조선은 왕세자가 한가하게 음악에 빠져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정조에게 가능했던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효명세자는 아마도 죽어서도 줄곧 눈물을 흘렸을 것만 같다. 그의 죽음으로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 꺼졌으니 말이다.

역사를 가정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의미한 일이라지만, 적어도 효명세자가 드라마의 결말처럼 할 수 있었다면 조선은 좀 더 오래 갔을 것이다. 또한 일본에게 그리도 무력하게 굴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효명세자 사후 조선은 왕조이면서도 왕이 다스리지 못하는 기형국가로 연명하다가 결국 비참한 끝을 보고 말았다.

KBS 2TV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조선 멸망의 원인은 권력이 제자리에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자리에 있어도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권력인데, 무려 60년간 있어야 곳에 있지 못한 권력이었으니 정치가 힘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왕조국가에서 권력은 왕에게 있어야 그나마 정상이다. 조선후기를 둘러봐도 영조, 정조 그리고 효명세자의 2년 등 권력이 왕에게 있을 때 정상의 정치를 그나마 시도라도 할 수 있었다.

비록 드라마에서는 역사를 완전히 뒤집은 결말을 보여주었지만 그래서 차마 웃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가정이 아니라 상상을 하게 된다. 효명세자가 죽지 않고 왕위를 계승한 후의 조선의 변화를 말이다. 어쨌든 이 드라마가 남긴 것은 박보검이라는 젊은 스타만이 아니라 본의든 아니든 효명세자와 조선의 비극을 알린 것도 작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동안 박보검, 아니 효명세자의 눈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