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는 게 시대정신인데 한 지상파방송 직능단체에서 정규직을 비정규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에서 사무처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사무처 규정’을 신설했다. 정규직 방송기술인들이 자체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들의 협회 직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대우하겠다는 ‘갑질’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방송기술인연합회는 KBS, MBC, SBS, EBS 등 지상파방송에 근무하는 정규직 기술인 중심의 직능단체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홈페이지 캡처

지난 7월 취임한 KBS 출신 박종석 신임 방송기술인연합회장은 사무처 직원들과 사전 협의 없이 기존 사무처를 4인 미만의 사업장으로 규정하는 ‘계약직 운영지침’을 신설했다. 또한 ‘기존 사무처 직원은 이 같은 계약직 운영지침에 해당되고 이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놓고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들이 4인 미만 사업장을 못 박는 이유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4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감봉 등의 징벌이 가능하다. 또한 해고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이들은 사무처 직원을 비정규직화하는 이유에 대해 “파산 등 회사가 어려워질 때를 대비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이들은 이 같은 사무처 규정을 신설하는 데 있어 사무처 직원들이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다. 일종의 계약 미비라는 근거이지만 많게는 10년 넘게, 적게는 2,3년씩 근무한 직원들이 근로계약 체결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그들이 문제로 삼는 근로계약 체결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없이 4인 미만 사업장으로 못 박았다.

현재 방송기술인연합회 사무처는 월간 방송기술, 방송기술저널 등과 관련해 5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방송기술 교육과 관련해 2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의 적용 여부는 회칙 등 사규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근무하는 인원수가 기준”이라며 “4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못 박는 의도는 뻔하지만 꼼수도 못 된다”고 지적했다.

절차상의 문제도 제기된다. 방송기술인연합회의 회칙 개정은 운영위원회가 아니라 대의원 대회를 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종석 신임 기술인연합회 회장은 미디어스와 전화통화에서 “사무처에 대한 관련 규정이 없어 기준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면서 “직원들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지상파 기술인협회장은 “4인 미만 사업장으로 회칙을 개정하더라도 직원들에 대한 대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방향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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