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예능 파일럿이 우후죽순 선을 보였다. 올 설에 음악예능이 봇물처럼 쏟아졌던 것과 달리 추석에는 나름 새로운 시도들이 많았다. 물론 건질 것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먹방, 쿡방의 유행이 정점을 찍었던 몇 년과 달리 요즘에는 확실한 트렌드가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이 이후 예능을 트렌드가 될지 아직은 미지수이기에,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긴가민가하는 분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띄는 시도들도 없지 않았다. KBS의 <TRICK & TRUE 사라진 스푼(이하 사라진 스푼)>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김종민도 할 수 있으면 과학이라는 말은 이미 과학과 예능의 그럴듯한 이종교배가 성공했음을 의미했다. 케이블이 선도하고 있는 지적 예능에 공영방송 KBS가 늦었지만 합류하고자 한 시도부터가 칭찬해줄 대목이다.

KBS2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TRICK & TRUE 사라진 스푼'

<사라진 스푼>은 일단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물론 파일럿이기에 전체적인 포맷과 진행이 매끄럽지 않고, 거친 부분도 많았지만 모두 손 볼 수 있는 요소들이라 잘만 가다듬으면 요즘 방송이 잊고 있는 지적 흥미를 새로이 경험케 해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사라진 스푼>은 어떤 현상을 보고 패널들이 과학과 마술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영화 <나우 유 씨 미>에서 정말 신기했던 장면을 예로 들자. 그 영화 엔딩 부분에서 마술사의 명령에 따라서 빗줄기가 멈추거나 혹은 중력을 거스르고 방향을 바꾸어 움직이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KBS2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TRICK & TRUE 사라진 스푼'

일단 직관적으로 그것이 마술이 아님은 빠르게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 기법에 의한 눈속임이거나 실제 가능하다면 그것은 과학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장면은 물론 마술이 아니었고, 영화의 눈속임도 아니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장치를 통해 얼마든지 재연할 수 있는 과학이었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커피를 젓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찻숟가락. 이 또한 마술의 기초 기술인 사라지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이 또한 인식의 함정이었다. 이 마술 같은 현상은 의외로 간단했다. 공대 출신이라면 미리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시청자가 보기에는 너무도 신기한 현상이었는데, 비결은 단순했지만 그 지적 충격은 컸다.

세상에 녹는점이 29.8도인 금속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저 손에만 쥐고 있어도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신기한 금속 갈륨. 원소주기율표에 아연 다음에 속하는 금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 잔을 젓는 동안 스푼이 금세 녹아 사라질 수 있었고, 촛불 옆에 둔 상자 속 반지가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KBS2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TRICK & TRUE 사라진 스푼'

사실 많은 경우 예능은 보는 자세는 대단히 느슨하다. 또 그것이 예능의 미덕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사라진 스푼>의 경우 자주 몸을 소파에서 일으켜 티비 앞으로 몸을 기울이게 된다. 티비 속에서 펼쳐지는 현상을 알아맞히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마치 <복면가왕> 초기에 가면을 쓴 가수들의 목소리를 알아내려고 집중하던 것과 매우 비슷하다.

대부분 몰랐고, 대부분 속았기 때문에 일단 흥미로웠고 뭔가 얻은 듯한 개운한 기분까지 방송 후에 남았다. 아마도 일반 시청자가 이처럼 알지 못하는 과학의 흥미로운 요소가 무궁무진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기에 방송 소재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예능에 맞는 옷을 입히는 작가들의 역량이 뒤따라줘야 할 뿐이다. 마침내 공영방송 KBS가 자기 정체성에 걸맞은 시도를 하나 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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