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고작 세 개의 광고로 시작된 <꽃보다 남자>. 하지만 원작 만화는 물론, 대만과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널리 회자되었던 콘텐츠의 유명세는 제작진이 놀랄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다. 무려 최고 시청률 32.9%(18회, 닐슨 코리아 기준)를 달성했으며, 구준표 역의 이민호를 비롯하여 김현중, 구혜선 등 출연진 모두를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높은 시청률이 곧 좋은 드라마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듯, <꽃보다 남자>는 방영 내내 어설픈 스토리로 질타의 대상이 되었으며 배우들의 함량 미달의 연기 또한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길고 긴 <꽃보다 남자>의 그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전 '캔디' 열풍처럼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네 명의 잘생긴 남자들을 '관람'하는 재미만으로도, 욕하면서도 남자 주인공들의 비주얼 때문에 ‘용서’되는 드라마의 효시가 되었다. 그리고 tvN은 8월 12일 새로이 시작되는 금토 밤 11시대 드라마로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라는, 백묘 작가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하였다. 제목에서도 벌써 알 수 있듯, 신데렐라 처지의 한 여성과 네 명의 남자들이 얽히는 이야기이다. <꽃보다 남자>의 또 다른 '판본'인 셈이다. 2009년의 <꽃보다 남자>에서 2016년의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까지, 아니 일찍이 77년 MBC를 통해 방영된 이래 83년 재방영되며 그 인기를 몰아갔던 <들장미 소녀 캔디>까지, 한 소녀와 여러 남자들의 '몰아주기식' 러브 스토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이 기세등등한 듯보인다.

아직도 윤지후 역의 김현중이 하얀 턱시도를 입고 바이올린을 켜던 그 '오글거리던'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되지만, 무엇보다 <꽃보다 남자>에서 기억되는 것은 이제는 대표적 한류 스타가 된 이민호를 비롯하여 김현중, 김범, 김준으로 이어지는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들이다. 대만판 <꽃보다 남자>가 가장 먼저 드라마로서 선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일본 드라마가 작품적 분위기에서 원작의 취지를 가장 잘 살렸음에도, 주인공을 한류 스타로 만들 만큼 남자 주인공들의 '잘생김'들은 다른 국가의 드라마의 <꽃보다 남자>를 압도한다.

이런 <꽃보다 남자>의 차별적 전략은 이후 평범한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여러 남자들의 다른 버전을 양산했지만, 아직도 <꽃보다 남자>가 회자되는 걸 보면 이후의 아류작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방영 당시 청소년은 물론 젊은이 그리고 중년 여성들까지 '접수'했던 이 작품은, 리모컨의 향배를 쥐고 있는 여성 시청자 층을 '노리기'에는 가장 편한 선택지가 된다.

가장 안이한 전략

tvN이 밤 11시 대에 금토 드라마를 신설하며, 100% 사전제작임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등에서 편성 받지 못한 채 떠돌던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를 편성한 것은, 여전히 유효해 보이는 <꽃보다 남자>의 전략을 다시 한번 들고 나온 듯이 보인다. 그간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들이 잘생긴 남자 주인공들을 내세우되 그래도 설정은 좀 달랐던 것과 달리,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는 가난한 소녀 은하원(박소담 분)과 네 명의 남자 주인공들이 다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돈'으로 많은 것을 해결할 있는 재벌가의 자제들 강지운(정일우 분), 강현민(안재현 분), 강서우(이정신 분)를 포진시켜 노골적으로 <꽃보다 남자>의 전략을 따라한다.

<꽃보다 남자>가 인기를 끌었던 솔직한 이유 중 하나는, 여러 잘생긴 남자들이 한 평범한 소녀를 사랑한다는 설정뿐만 아니라, 잘 생긴 데다 돈까지 많은 그들의 '돈질'에 또 하나의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첫 회는 가진 것과 잘생김으로 그들이 다니던 학교의 F4가 되어 기세등등했던 <꽃보다 남자>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한다. 은하원이 일하는 편의점을 찾은 강현민은 그의 약혼녀가 되기를 청하며 대번에 돈다발을 들이밀고, 은하원이 일하는 편의점을 통째로 비우는 '돈'자랑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신데렐라에게 나타난 마녀처럼, 돈 때문에 강현민의 약혼자가 되기로 한 은하원을 '신데렐라'처럼 꾸며준다. 물론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금잔디가 그랬듯, 은하원은 그런 강현민의 돈 자랑이나 그녀 주변에 우연처럼 등장하는 잘생긴 남자 주인공들의 외모에 눈길 한번 흐트러지지 않는 의연함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의연함과 상관없이 그녀의 어려운 형편이 그녀로 하여금 1일 약혼자가 되게 만들었듯, 이들과 한집에서 얽히는 운명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렇게 <꽃보다 남자>의 전략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에 대한 반응은 갈린다. '오글거린다'는 반응 한편에, 그럼에도 '로맨스 소설' 보듯이 볼 만하다든가 연기랑 상관없이 잘생겨서 좋다는 반응이다. 박소담은 <뷰티풀 마인드>에 이어 다시 한번 씩씩한 여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신의 캐릭터를 가두는 아쉬움을 남기지만, <뷰티풀 마인드>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던 것과 달리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모습이 한결 자연스럽다. 그녀가 영화 유망주에 이어 TV 유망주가 될지는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가 관건이 될 듯 보인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박소담에 비해, 그녀를 사랑하게 될 세 명의 재벌가 자제들의 면면은 그리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극이 전개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멀쩡한 허우대에 비해 이렇다 할 연기력이 보이지는 않는, 그래서 전작에서 연기력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던 안재현도 이물감이 없어 보이는 정도의 모습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의 모든 여성은 잠재적인 나의 애인이라는 강현민이나, 재벌가의 자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층 상승의 괴리감을 오토바이를 타고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해소하는 강지운이나, 본투비 뮤지션 같아 보이는 강서우나 이렇다 할 캐릭터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첫 회 그들의 연기는 '잘생겼으니 다 용서가 된다'는 식이다.

결국 이들의 연기랑 무관하게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드는 이들이 비주얼이, <꽃보다 남자>에 이어 다시 한번 tvN의 새 금토 드라마를 구원할 것인가? 안 그래도 이미 포화 상태인 드라마 시장에 또 하나의 드라마를 등장시키며 안이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tvN. 하지만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로 금토 드라마를 안착시킨다 해도, 여전히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 시간에 드라마를 방영해야 하는 당위론은 쉬이 설득하기 힘들어 보인다. 재벌들의 허황한 사생활에 휘말려 든 시청자들을 위한 '고단한 세상에 대한 위로'라기엔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