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한국 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08개국, 10,903명의 선수들이 모인 세계인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개막 전, 준비되지 않은 경기장과 지카 바이러스의 위협, 거기에 '올림픽'이라는 전 세계인의 축제에 대한 자국민들의 끊이지 않는 반발 등, 과연 31회 브라질 올림픽이 무사히 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브라질의 자연 환경을 주제로 한 초록의 오륜기가 수놓은 개막식을 시작으로, 그런 우려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전 세계인의 축제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언제나 그래왔듯, '올림픽 특수'라는 이 한 철 장사에 한 지상파 방송사은 멀쩡하게 방영되던 드라마를 올림픽 중계방송을 핑계로 조기종영시키고, 브라질 현지에서 경기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방송 피크 타임인 밤 10시 이후 지상파 3사 방송국의 모든 프로그램은 '올림픽'으로 도배된다. 전 세계적 축제에 올림픽이 아닌 시청자의 볼 권리는 무가치해지고, 삼지선다는커녕 OX도 아닌 '획일적 선택지'로서 올림픽 중계가 방송을 장악한다.

지상파 3사를 장악한 올림픽 중계 방송

리우 2016 개회식 중계방송 (SBS 화면 캡쳐)

덕분에 얼마 전만 해도 연일 터지는 연예인들의 가십성 스캔들로 도배되던 뉴스는 이제 올림픽과 관련된 제반 뉴스와 거기서 파생되는, 심지어 한 연예인의 인스타그램 반응까지 가십화하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배제되는 것은 말해 입만 아픈, 각종 정치 문제와 사회적 현안들이다. 밤새워 지켜본 올림픽 경기가 구현하는, 영화 <국가대표> 저리가라 할 '인간 승리' 혹은 '인간 실격'의 드라마들이, 시청률 안 나오는 드라마 정도의 조기종영은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당연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골치 아픈 현안들도, 모자란 잠과 함께 시큰둥해질 뿐이다. 잠시, 현실을 벗어나 한여름 밤의 축제에 젖어들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렇게 밤새워 노니는 올림픽 축제, 과연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일까? 한국 시간으로 8월 6일부터 22일까지 벌어지는 올림픽에서 39개 분야, 28개 종목의 경기가 벌어진다. 그 중에서 한국이 참가하기로 확정된 종목은 현재 24개 종목이다. 그런데 매일 밤 지켜보는 종목들은 어떤가?

8월7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쳐

8월 8일 지상파 3사의 방송 편성표에 따르면 KBS1이 펜싱, 핸드볼, 유도, 사격을 KBS2가 핸드볼, 양궁, 펜싱, 유도를 MBC가 여자 핸드볼, 펜싱, 유도, SBS가 핸드볼, 양궁, 펜싱, 유도를 중계했다. 물론 올림픽 경기는 16일 동안 각 경기의 예선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 벌어지는 경기가 있고 뒤에 벌어지는 경기가 있다. 하지만 편성표를 보고 있노라면, 이건 분명한 전파 낭비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메달 가능성이 높은 유도와 같은 종목에 편중된 것은 물론, 이것을 KBS1까지 지상파 네 개의 채널들이 겹쳐서 방영하고 있다. 펜싱이나 핸드볼은 우리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 전만 해도 외면 받던 종목들이었지만 이젠 우선적으로 편성의 배려를 받는다. 탁구처럼 최근 부진한 종목들은 예선전 경기들이 당연히 편성에서 제외된다. 그래도 SBS에서 하이라이트로 방영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조정이나 사이클 등은 아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강요된 편성, 시청자의 선택권은 없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그런 '메달'을 딸 가능성 있는 종목 위주로 앞 다투어 편성을 하다 보니, 시청자들은 여기를 돌려도 저기를 돌려도 똑같은 종목, 리모컨의 선택권을 잃는다. KBS2야 광고가 중요하니 그렇다 치고, 최소한 KBS1이라도 메달 가능성이 희박한 종목에 대한 배려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가적 스포츠 행사에서 매번 반복되는 일이니 새삼스럽지도 않다지만, 그 반복되는 일에 대한 반성이 여전히 눈곱만치도 없는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 사실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축구 경기를 비롯하여 중요 경기마다 방송사들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차별성을 위해 유명 선수들을 해설가로 내세워 '호객 행위'를 한다.

유도 안창림 경기 중계방송 (KBS 화면 캡쳐)

하지만 벌써 들리는 소식은 그런 방송사들의 편향된 경기 중계가 올해는 그다지 빛을 발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8월 9일 경기에서 남자부 73kg급 금메달 유망주였던 안창림 선수와 여자 57kg급 김잔디 선수가 16강에서 조기 탈락하며 충격을 안겼다. 남자 양궁 세계랭킹 1위 김우진이 조기 탈락하였으며, 여자 펜싱 사브르 김지연은 16강의 문턱을 넘지 못 했다. 어렵사리 출전한 박태환은 예선의 벽을 뚫지 못했다. 30회 런던 올림픽에서 종합 5위에 빛났던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엘리트 체육의 문제점이 제기된 지 오래된 한국의 올림픽 금 사냥이 그간 '기적'을 일궈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방송사들은 '올림픽'이란 명목으로 다시 한번 전 국민을 '스포츠의 축제'가 아니라, '메달 사냥'의 레이스에 질주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현재 '편성표'의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이젠 기대대로 '메달 사냥'을 해주지 못하는 올림픽 전사들의 성적에 아쉬움과 비난을 쏟아 붓기 전에, 이제라도 한국 사회 경쟁 우선주의의 또 다른 표현인 올림픽 관전의 패턴에 다른 시각을 가질 기회라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에게 스포츠는 '게임의 승리'를 '인간 승리'로 치환해내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라도 영화 <백엔의 사랑>처럼 패배 속에서 진짜 인생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정말 세계인의 축제를 즐기게 해주고 싶다면 메달 가능성이 없는 외면 받는 종목도 중계해 줄 일이다. 그리고 그런 종목의 경기도 기꺼이 밤새워 지켜보는, 진짜 스포츠 정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올림픽이 아니라도 이 폭염의 밤을 즐길 다른 프로를 선택할 권한을 이제라도 시청자에게 돌려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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