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승과 연패를 오가는 롤러코스터 전적을 보이는 것이 요즘 KIA 타이거즈이다. KIA는 불이 붙은 타선이 지속되면서 올시즌 NC, 넥센과 함께 지독한 열세에 놓여 있던 두산과의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가져가 순위를 5위로 끌어올리는 등 기세를 높이는 중이다. 그런 중에 올스타 휴식기를 맞아 치러지는 전반기 마지막 3연전 SK와의 대결은 대단히 중요했다.

이미 1패를 안은 채 맞은 3연전의 이튿날. 올시즌 KIA 선발투수 중 가장 안정적인 활약을 해주고 있는 헥터가 마운드에 올랐다. 마치 전날의 데자뷔처럼 1회에 실점을 했다. 그렇지만 매회 안타 및 사사구 등을 섞어 역전의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그러나 전날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득점 상황에서의 후속타 불발로 점수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큰 점수차는 아니었어도 경기 내내 SK에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1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와 KIA 경기. 6회초 KIA 김원섭이 동점 2루타를 성공하고 있다. 2016.4.1 Ⓒ연합뉴스

그러나 7회말 김주찬의 솔로 홈런으로 가까스로 동점을 만들었고 8회에 서로 1점씩을 주고받으며 3대 3 동점이 된 상황에서 마운드에는 다시 임창용이 올랐다.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임창용은 첫 타자 이재원에게 안타를 내주었고 불안은 더욱 커졌다. 다행히 임창용은 무사 1루의 위기에서 후속타자들을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승부의 키를 9회 말 팀동료들에게 쥐여주었다.

9회말 KIA의 타선은 역전을 기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7회에 솔로 홈런을 쳤던 김주찬부터였다. 물론 SK도 거세게 대응했다. 마무리 박희수를 8회에 이어 9회에도 계속 기용했다. 첫 타자 김주찬이 높은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이어 이범호가 중전안타로 진루하며 희망의 끈을 이어갔지만 다음 타자 브렛 필이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단 한 개의 아웃카운트만 남겨놓게 됐다. KIA로서는 다시 연장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음 타자 서동욱 타선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박희수의 2구가 그대로 서동욱의 헬멧을 강타했다. 다행히 서동욱은 아무렇지 않게 곧바로 일어서 1루로 걸어갔지만 직구로 타자 머리를 맞춘 박희수는 퇴장을 당했다. 뭔가 드라마가 써질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드는 분위기였다. 양 팀의 희망과 불안이 충돌하는 긴장감이 그라운드를 억눌렀다. 박희수에 이어 급하게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문광은이었다. 그리고 KIA의 마지막 타자는 운명처럼 김원섭이었다.

초구, 이구 모두 스트라이크로 타자 김원섭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3구부터 김원섭의 방망이가 가동했다. 3구 파울, 4구 낮은 볼 그리고 운명의 5구에 김원섭의 방망이가 매섭게 출동했다. 김원섭의 타구는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에 떨어졌다. 정타는 아니었지만 안타였다. 아니 빗맞아서 타구 속도가 느리고 체공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었던 것이 주효했다. 2루 주자였던 이범호의 주력을 감안한다면 빗맞아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16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범경기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3회말 2사 주자 2루 상황 KIA 김원섭이 내야 뜬공을 치고 있다. 2016.3.16 Ⓒ연합뉴스

2군에 오래 머물다 최근 1군에 합류한 김원섭은 그렇게 다시 한 번 SK전 끝내기의 영웅담을 하나 더 만들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사건이 있다. 지난해 김원섭은 자신의 1천경기 출전을 자축하는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 지금은 한화로 옮긴 정우람을 상대로만 끝내기 홈런 두 번을 친 김원섭이었다.

끝내기가 야구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지만 그만큼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같은 팀을 상대로 여러 번의 끝내기를 기록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끝내기 홈런 두 번에 끝내기 안타 한 번. 이 정도면 김원섭을 SK전 끝내기 스페셜리스트라 불러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1군 등판 자체가 오랜만인 김원섭은 팀동료들의 축하 속 중계진과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였다. 야구를 해온 날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날이 현저히 적은 고참의 회한이 담긴 눈물이었다. 그런 고참 김원섭의 인터뷰장에 후배 양현종과 외국인 투수 헥터가 물병과 크림이 잔뜩 묻은 수건을 들고 난입했다. 인터뷰 도중이라 대충 닦은 바람에 김원섭은 졸지에 맹구 스타일이 됐다.

김원섭은 “나이 든 선배를 괴롭히는 후배들은 저희 팀밖에 없을 거예요”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내심 후배들의 장난에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김원섭이 인터뷰를 하는 일이 그리 잦은 편은 아니지만 중계진은 항상 그에게 정해진 매뉴얼처럼 건강, 체력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핑계가 될 수도 있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김원섭은 그것이 가장 싫다고 했다. 자신이 못하면 그냥 못하는 거라며 지병 뒤에 숨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이런 선수니 성적과 무관하게 늘 그리워하고 이따금씩 보여주는 활약에는 크게 기뻐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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