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이하 미디어위) 두번째 회의는 한마디로 ‘공회전의 반복’이었다. 회의공개, 여론조사, 운영소위 구성 등 미디어법 본격 토론에 앞서 운영방식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한 이날 회의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합의 사항 없이 시간만 지나가자 위원들도 점점 피로해지는 듯했다. 주 사회를 맡은 김우룡 위원장(한국외대 교수·한나라당 추천)은 “오후 1시25분에는 산회를 해야 한다”며 합의를 이루지 못한 사안들을 운영소위로 미루겠다고 했다. 한쪽에서 “운영소위 구성도 합의를 보지 못했는데, 운영소위에서 어떻게 논의를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 20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에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두번째 전체회의가 3시간 30분가량 진행됐으나 별다른 소득없이 끝났다. ⓒ곽상아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물리적으로 촉박한 시간 내에, 첨예한 입장차를 가진 위원들이 합의를 이뤄내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같은 현실적 한계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여당 추천 위원들이 ‘사회적 논의’를 할 마음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정점에는 김우룡 위원장이 있다.

20일 회의의 주 사회를 맡은 김 위원장은 위원회 내에서 회의 공개에 관한 원칙이 세워지지 않았음에도 회의 시작 후 15분만에 “이제 그만 기자들은 퇴장해달라”며 일방적으로 회의 비공개를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는 자문기구에 불과한데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꾸 시비를 걸면 정치 투쟁의 장으로 만들자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원회 위상을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효율적 회의 운영을 위해 구성된 운영소위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위원장은 배제하고, 여야 추천 4인만으로 구성돼야 한다”며 그동안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류성우 위원(언론노조 정책실장·민주당 추천)은 “위원장이 소위에 참석해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상현 위원장이 성의있는 자세로 운영소위에 참석하는 반면, 김우룡 위원장은 첫번째 운영소위 회의에도 참석을 안하고, 2번째 회의때도 참석하겠다고 했으면서 또 참석하지 않았다”며 “김우룡 위원장은 위원장직을 끝까지 성실하게 완주하실 의향이나 소신이 없으시다면 미디어위를 위해서 소신있는 결단을 하셔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운영소위에는 위원장들이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이창현 위원) “대표권한을 가지는 두명의 위원장이 참여해야 한다. 운영소위가 얼마나 자세한 논의를 통해 안을 만들어오는 지가 사회적 논의기구 운영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박경신 위원) 등 위원장의 운영소위 참여를 촉구하는 위원들의 발언이 이어졌으나 김 위원장은 끝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박경신 위원의 지적대로 전체회의에 앞서 사전 조율기능을 담당하는 운영소위는 미디어위의 운영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교수,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 등 본업을 가진 스무명의 미디어위원들이 전부 모여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김우룡 위원장(왼쪽)과 강상현 위원장(오른쪽) ⓒ곽상아

전체회의에 앞서 운영에 관한 문제 등을 양쪽 위원장이 합의한다면 실질적 회의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거의 ‘난장토론’이 되다시피 하는 현재 상황과 촉박한 미디어위원회의 일정을 감안할 때 간사의 자율성을 살려주기 위해 운영소위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김 위원장의 입장은 선뜻 이해가지 않는다. 일각에서 “김우룡 위원장은 애초부터 ‘알박기’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왜 일반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야 하느냐”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뭐 하겠느냐” 라는 여당 추천 위원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지난 2일 여야 교섭단체가 ‘사회적 논의’ ‘여론수렴’을 명문화한 합의문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다.

김영 위원(전 부산MBC 사장·한나라당 추천)은 “전문가집단이 전문가집단 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라든지 이런 걸 계속 주장하면 우리 전문가집단이 왜 필요하겠느냐”라고 주장했고, 최선규 위원(명지대 교수·한나라당 추천)도 “우리는 자문기구일 뿐인데 왜 자문기구가 여론조사를 하느냐. 언론학자들한테 신방겸영과 관련된 질문을 했는데 이에 대해 답을 못 내리겠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일반 국민들한테 물어보냐”고 말했다.

이헌 위원(시변 변호사·한나라당 추천)은 “일반적인 회의 진행은 보도진을 앞에 두고 하는 게 아니다. 보도진이 앞에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할 것 같다”며 여론조사 실시에 대해서도 “여론조사 결과 나오면 뭐 하겠느냐. 왜 여기서 하자는 것인지 이해 안 간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냐”고 주장했다.

모두발언에서 강상현 위원장(연세대 교수·민주당 추천)은 “효율적 논의를 위해 운영소위를 만들었으나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이 추천한 많은 위원들이 가급적이면 회의는 비공개로 하고, 만나는 횟수는 적게 하고, 여론 조사같은 것은 필요없다는 식으로 말해서 운영소위의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며 “이는 국민에 대한 예절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벌써부터 미디어위는 “양쪽은 합의를 못 이룰 것이다. 결국 누가 먼저 뛰쳐나가느냐의 싸움이다” “미디어위는 쟁점법안을 양쪽이 논의했다는 구색맞추기 용일뿐 정부 여당의 언론정책 추진에서 큰 변수가 아니다”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벌방송·조중동방송 만들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법에 대한 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쟁과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합의에 이르고 싶지 않은 일부 논의주체들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