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해영>에게 참패를 겪은 지상파 월화드라마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 첫날인 20일, 김래원, 박신혜의 <닥터스>가 장혁, 김소담의 <뷰티풀 마인드>를 크게 앞질렀다. 영화에서 시작 5분이 흥행을 결정짓는다면 드라마 역시 첫 회에 이미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지난 5월을 강타한 <또 오해영>의 서현진이 그랬듯이 <닥터스>의 초반 공략을 위해 박신혜가 과감하게 불량신혜로 나선 것이 우선 주효했다.

사실 한국 여배우들의 액션실력은 대단히 부실하다. 그래서 대부분 대역을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신혜는 조폭들과의 액션이나 고교시절 회상에서 불량서클 여학생들과의 액션을 모두 대역 없이 소화해냈다. 과거 랜디신혜라는 별명을 얻게 된 프로야구 시구 때 운동신경이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대역 없이 액션을 해내는 모습은 놀라웠다.

SBS 새 월화드라마 <닥터스>

불우했고 그래서 불량했던 시절은 금세 끝나고 할머니를 위해서 좋은 사람, 즉 의사가 될 것이라 이 액션신혜의 모습을 더는 못 볼 것 같지만, 박신혜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즐거움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직 고등학생 시절의 박신혜의 모습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박신혜의 캐릭터가 너무 과하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예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개념까지 꽉 찬 여의사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거의 반칙수준이다. 그래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그 과한 캐릭터를 붙잡아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할머니 김영애다.

SBS 새 월화드라마 <닥터스>

할머니 김영애는 이 완벽한 캐릭터 유혜정의 유일하게 아픈 손가락이다. 흥분하면 욕부터 나오는 다혈질이지만 손녀 혜정에게는 무조건 약하고, 무조건 편들어주는 그야말로 거스를 수 없는 내리사랑. 혜정이 변화하게 되는 것도, 변화 후 다시 더 성장하게 되는 것도 이 할머니 때문이다. 어쩌면 상대역인 김래원의 관계보다 더 기대되는 케미라고 하고 싶다.

누구나 바라지만 현실에 없는 그런 할머니다. 뭔가 익숙한 존재이지만 그래서 거꾸로 보기 힘들어진 관계다. <닥터스> 포스터에는 ‘당신을 만나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갑니다’라는 카피가 쓰여 있다. 당신이 직접적으로는 김래원이겠지만 더 깊은 정서 속에는 이 할머니가 있다. 거창하게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도 없이 시청자의 착한 정서, 착함의 욕구를 자극하기에는 딱 좋다.

<닥터스>는 휴먼메디칼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다 믿기는 힘들다. 누리집에 떠도는 말이 있다. 한국드라마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미드는 의사가 수술을 하고, 일드는 의사가 교훈을 준다. 그런데 한국드라마의 의사는 연애를 한다는 내용이다. 장르를 어떻게 내세우든 한국드라마는 결국 기승전연애라는 냉소가 담겨 있다.

SBS 새 월화드라마 <닥터스>

<닥터스>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럴 때에도 이 드라마를 휴먼이라는 단어 안에 머물게 해줄 것은 병원에서의 더 이상은 새로울 것 없는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할머니의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글의 내용이 다소 엉뚱하게 흘렀지만 서둘러 결론을 수습하자면, <닥터스> 첫 회는 불량신혜, 액션신혜가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또 오해영>이 끝나 가는데 <닥터스>가 기대를 갖게 해주어 다행이다. 그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지상파 드라마가 이제 체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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