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전격 합의를 내놓기 직전인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전국언론노조 총파업 4차 결의대회 장소에서 그가 보였다. 언론노조 CBS지부 깃발 아래 앉아있는 그 사람은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국내 최장수 영화음악 전문 라디오방송 ‘신지혜의 영화음악’의 진행자이자 제작자인 신지혜 아나운서다.

무릎이 절로 떨리는 한파의 날씨. 그는 기자에게 “내가 왜 여기 앉아있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 신지혜 전국언론노조 CBS지부 조합원ⓒ곽상아
“내 자리는 스튜디오 마이크 앞인데, 내가 왜 하고 싶은 방송 준비를 못하고, 여기 앉아서 떨고 있어야 할까요? 답은 하나에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사람의 다양한 의견 표현이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지키기 위해,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을 막기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이 국회 앞에 모여서 떨고 있는 것이죠.”

이번 총파업이 특정 방송사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일부 신문 보도 얘기를 꺼내자 그는 “MBC 밥그릇 싸움이라면 왜 CBS 아나운서인 내가 이 자리에 나와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일부 신문의 ‘밥그릇’ 논리에 대해, 자발적으로 언론노조를 지지해 응원 촛불을 들고 모이는 시민들 모두를 부정하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답했다.

총파업 기간 CBS지부는 지난달 30일과 31일 전면 제작거부 투쟁을 벌였고, 현재는 선전전 등 부분파업을 진행 중이다. 갑자기 십년 넘은 진행자가 나오지 않는 방송에 대해, 청취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십년 넘게 제가 진행하던 방송인데, 노조원이 아닌 부장님 등 윗분들이 이틀간 진행하셔서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도 청취자분들의 격려와 지지가 너무 많아서 참 감사했지요. 게다가 ‘그냥 무조건 지지’가 아니고, ‘내가 파악해 보니 문제가 많더라, 힘내라’는 내용들이 상당했어요. 이번 언론관계법의 문제와 본질을 잘 알고 건네는 응원이라, 저희들 파업의 뜻을 잘 알아주신다는 생각에 더욱 보람되고 힘이 났습니다.”

일단 직권상정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그는 이번 싸움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쉽게 끝날 싸움은 아니라고 봅니다. 길어지면 지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면 좋겠어요.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지켜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니까요. 방송 하는 사람들이 세상물정도 잘 모르고 나약할 거라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언론 노동자들은 절대 나약하지 않습니다. 특정 세력 입맛에 맞는 언론을 만들어 가게 할 수 없습니다. 대오 흐트러지지 않고 열심히 싸울 겁니다.”

CBS노동조합은 지난 2000년 9개월간 장기 파업을 벌이며 사주에 맞서 싸운 경험도 있다. 장기 파업을 통해 겪은 여유와 내공 때문일까. 그는 오히려 느긋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엔 일주일 안에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9개월까지 간 거였어요. CBS 사람들, 징글징글한 사람들이죠?(웃음) 당시에는 내부 싸움이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상황이죠. 모두가 걸린 싸움이에요. 저희 방송사도 정부의 민영 미디어렙 도입 등으로 위기의식이 상당합니다. 앞으로 갈 길은 멀겠지만, 자신 있어요.”

앞으로의 각오를 묻자 “저는 강성이 아니에요. 그저 방송하고 싶을 뿐이고~ 그런데도 파업 집회에 나올 수밖에 없고~”라며 부끄럽게 웃는다. 신영음 영화제 등 다양한 도전으로 청취자와의 소통을 계속해가는 그는 현재 그간 방송내용을 모은 <씨네마 레터>라는 책출간을 앞두고 있어 마음이 더욱 바쁘다고 한다.

“방송하는 사람들에게는 청취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가장 큰 힘이지요. 그래서 이번 싸움은 희망으로 시작한 싸움이에요. 모두를 위한 싸움이니까요.”

▲ 지난 6일 오후‘제4차 언론노조 결의대회’에 참석한 CBS 신지혜 조합원(사진 한 가운데 앉은 여성. ⓒ곽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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