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장편 데뷔작이 부산에서 상영된 게 2006년이었다. 10년 전이다. 당시 영화제 측에서 ‘해외 유명 감독 때문에 방을 바꿔달라’는 요구를 했었는데, 흔쾌히 수락했었다. 영화인들 간 으싸으쌰해서 영화제를 잘 키워야 한다는 상호인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영화인들이 의기투합했고, 영화가 좋아 찜질방에서 잠자며 관객들이 키운 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다. 그 기간 서병수 시장은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제가 지역에 수백억 이상의 기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영화제가 위기에 처하면 문화도시 부산 역시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인, 힘의 논리로 인해 영화제가 망가지고 있다. 부산시민들이 주민소환이라도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_영화 <후회하지 않아> 이송희일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2014년 영화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시와의 갈등은 법정소송으로 이어졌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위촉한 신규 자문위원 68명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그가 위촉한 신규 자문위원들에 대해 “자격 없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흔들고 있다”고 불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9개 영화단체들은 자율성·독립성이 훼손됐다면서 ‘보이콧’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24일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과 뉴커런츠 부문에 참여했던 영화감독 148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어떠한 부당한 간섭과 압력에 굴복할 수 없다”며 “영화제를 지켜내자”고 뜻을 모았다. 다큐 <송환> 김동원 감독을 비롯해 김병준, 김미례, 김성제, 김일란, 김조광수, 김태용, 박찬옥, 변영주, 부지영, 유지태, 윤성호, 이마리오, 이송희일, 이수진, 태준식, 홍석재, 홍형숙 등 한국영화 발전을 이끌고 있는 감독들이 다수 이름을 올렸다.

“자기검열 분위기가 8년 동안 계속…문화공간 잃을까 걱정”

다큐 <명성 그 6일의 기록>, <송환>, <상계동올림픽> 등 굵직한 주제로 한국사회의 슬픈 단면을 그리고 있는 김동원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는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과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면서 “상도 받았지만 변영주 감독과 춤추며 파티를 하거나 남포동 길바닥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고 검열 철폐 시위를 하는 등 해운대에서 즐거운 추억이 많은 영화제”라고 말문을 열었다.

24일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과 뉴커런츠 부문에 참여했던 영화감독 148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어떠한 부당한 간섭과 압력에 굴복할 수 없다”며 “영화제를 지켜내자”고 뜻을 모았다.

김동원 감독은 “임권택 감독님 말처럼, 다큐 <다이빙벨> 하나 때문에 세계적 지명도가 있는 영화제가 휘청거리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어떻게 보면 서병수 부산시장이 안쓰럽기도 하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 하나 때문에 전국이 시끄럽고 전 세계 영화제에서 회자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용납할 수가 없다”며 “<다이빙벨> 다큐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사법부 판단에 맡기고 제발 영화제를 정상화시켜주길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김동원 감독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서 제작 뿐 아니라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어센터 같은 유통까지 포함해 여러 가지 제약들이 있어왔다”며 “창작자들에게는 자기검열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8년 동안 계속돼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화 내지 문화예술계 쪽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그들을 쳐내면 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조치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위축되진 않았다. 다만, 그런 조치들로 인해 소중한 문화공간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은 든다”고 담담하게 문제를 지적했다.

“부산국제영화제 1회 때 중학생이었다. 김제에 살고 있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한 시간 반 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때 제가 커서 영화를 할 것이라고 생각은 안했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기억이 시간이 흘러 영화를 꿈꾸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2014년 영화 <소셜포비아>로 초청을 받아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다시 두근거렸다.…(중략)…걱정되는 건,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이번 사태로 인해 기회와 문화공간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_영화 <소셜포비아> 홍석재 감독

2016년 영화 <눈꽃>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던 박석영 감독도 기자회견을 찾았다. 박석영 감독은 “2016년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표현의 자유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다. 납득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영화 <스틸플라워>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한공주> 이수진 감독, “<다이빙벨> 상영 안했자면 더 끔찍했을 것”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한공주> 이수진 감독은 “시간이 흘러 혼자 (부산시의 압력에 따라)‘만일, 다큐 <다이빙벨>을 영화제에서 상영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며 “지금보다 더 끔찍한 사태가 됐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수진 감독은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된 영화제에 누가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고 싶겠느냐”며 “또, 어떤 관객들이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싶겠느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서병수 부산시장이 기자회견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도대체 누구의 영화제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고 한다”며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이간질을 시키려는 게 안타깝다. 거꾸로 2016년 21회를 앞두고 있는 영화제에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부지영 감독은 “2008년 첫 장편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게 됐다”며 “그 후, 2014년 영화 <카트>가 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교감했던 기억이 남는다. 그곳에서 받았던 지지와 환대들이 제가 계속 영화를 만드는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영화제가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받지 못해 한 순간에 무화되고, 문화적 자산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통탄스럽다”고 개탄했다.

부지영 감독은 “영화제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이라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헤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라면서 “그런 부분들이 빨리 보장돼 영화제가 정상화되고, 다시 영화인들의 동력이 되고 살찌울 수 있는 자산이 되길 바란다”고 읍소했다.

영화 <소통과 거짓말>로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이승원 감독. 그는 “권력을 가진 분들이 예술의 속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예술은 짓밟힐수록 강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지금 이 시기 더 훌륭하고 엄청난 작품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절망의 이때 감독들은 더 전진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본 김조광수 감독(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제작)은 “부산시가 제기한 효력가처분 판결이 다음 주 28일(월)에 나올 것”이라며 “그 판결에 따라, 임시총회 여부 등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제 정관에 자문위원 위촉은 집행위원장의 권한이라고 명시돼 있고, 서병수 시장이 사회를 본 총회에서 68명의 신임 자문위원건이 통과됐다”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효력 가처분 판결과 임시총회 상황을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이날(24일) 부산지검에 출두해 횡령·배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부산시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사무국장을 고발한 것에 따른 조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고 싶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참가감독 14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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