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평택에서 학대를 당하다 사망한 아동의 사건이 언론에 처음 보도됐다. 언론은 이 사건에 피해 아동의 이름을 붙여, 하루가 다르게 기사를 써 내려갔다. 아동학대의 구조적 문제점은 무엇이고 왜 반복되는지,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등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내용보다는, 가해자가 피해 아동을 어떤 식으로 괴롭혔는지를 지나치게 상세하게 전하고 재연을 필요 이상으로 활용하는 등 ‘선정적 보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지난 8일부터 현장 검증이 있었던 14일까지 KBS·MBC·SBS·TV조선·JTBC·채널A·MBN 메인뉴스를 모니터링한 후, ‘평택 아동학대 사망사건 보도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7개 방송사 메인뉴스가 1주일 간 다룬 해당 사안 보도는 총 61건이었는데, 범행이나 수사 진행사항을 단순전달(33건, 54.1%)하거나 자세한 학대내용을 전달(15건, 24.6%)한 보도가 48건으로 78.7%에 달했다. 아동학대 예방대책 관련 보도는 단 1건(KBS <뉴스9>)으로 1.6%에 그쳤다.

미디어운동본부는 △지나치게 상세한 사건 내용 보도 △자극적인 영상 구성 △계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재생산 3가지를 평택 아동학대 사건 보도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3월 12일 SBS <8뉴스> 보도

사건 내용을 지나치게 상세히 전한 사례로는 12일자 SBS <8뉴스> 리포트 <설마했는데..7살 원영이 끝내 주검으로>를 들 수 있다. 이 리포트에서는 “부모는 아이를 화장실에 감금한 채, 한겨울에 찬물과 락스를 끼얹는 등 끔찍하게 학대”, “신 군 부모는 지난달 1일, 아이가 소변을 가리지 못해 욕실에 가두고 옷까지 벗겨 찬물을 퍼부었다고 털어놓았다” 등 사건 내용이 자세히 나오며, 아이 시신을 수습한 후 산을 내려오는 경찰의 모습, 피의자들이 암매장 장소 근처 슈퍼에서 산 물건과 영수증도 등장한다.

미디어운동본부는 “SBS 보도만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방송사의 보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적된 문제점”이라며 “사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보도의 내용과 화면은 보도의 내용을 선정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는 없으며, 이와 같은 내용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언론에 의한 2차 피해를 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양해야 할 보도방식”이라고 지적했다.

9일자 TV조선 <뉴스쇼 판>의 <[단독] 1년전 신고 했지만 경찰 ‘헛걸음’> 리포트는 불필요한 재연을 넣었다는 점에서 ‘자극적인 영상 구성’의 한 예로 제시할 수 있다. 이 리포트에서는 한 어린이가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어른에게 혼나는 모습이 ‘재연’ 형식으로 나타나 있다. 미디어운동본부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9조는 ‘피해자·가해자 또는 당사자 등의 배역에 어린이를 출연시켜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해당 보도는 이를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3월 9일 TV조선 <뉴스쇼 판> 보도

피해 아동의 누나가 친어머니에게 쓴 편지(상담일지에 기록돼 있는 내용)을 공개한 10일자 JTBC <뉴스룸>의 <평택 실종 아동 공개수사 착수>, 11일자 채널A <[단독] 전처 애 키우기 싫었다>도 ‘문제적 보도’로 꼽혔다. 미디어운동본부는 “방송을 통해 공개돼서는 안 되는 자료임에도 상담일지를 공개한 것은, 사건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호기심과 동정심을 가지도록 한다”며 “이처럼 선정성 경쟁을 하는 보도양상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건 현장검증 중계보도와 관련해서도 “시청자들은 범행 재연 장면뿐만 아니라, 현장에 몰려든 사람들이 달걀을 던지고, 락스통을 들고 살인죄 적용을 외치고, 욕설을 하는 등의 장면을 보게 된다”면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위와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며 시민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디어운동본부는 ‘친부’와 ‘계모’가 공동 피의자인데도 ‘계모’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보도 행태 역시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널A <[단독] 전처 애 키우기 싫었다>(3월 11일), TV조선 <[뉴스 인사이드] 인면수심 부모 처벌은?>(3월 11일), KBS <'학대 묵인·범행 은폐'…친부 행동 ‘의문’>(3월 13일), MBN <분노한 주민들 "락스 학대 받아봐라">(3월 14일) 등의 리포트는 계모의 평소 행실을 더 문제 삼는 뉘앙스의 보도를 선보였다.

미디어운동본부는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친부와 계모임에도, 앞선 사례에서처럼 계모의 죄가 더욱 강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친부의 잘못보다 계모의 잘못이 강조되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여성의 역할로만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라며 “친부의 묵인이 없었더라면 이번 사건과 같은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의 잘못임에도 계모에게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는 보도는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보도는 계모이기 때문에 아동을 학대한 것이라는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계모에 대한 편견은 재혼 가정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3월 11일 채널A <종합뉴스> 보도

미디어운동본부는 “과연 이런 보도들이 아동학대 예방에 도움이 될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학대가 이루어졌나’가 아니라 ‘아동 학대를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이다”라며 “모든 언론사에게 아동학대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를 멈추고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제시해 주는 성숙한 보도를 하길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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