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B아파트 1단지에 거주하면서 쓰레기집하장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관련 문제로 주민들과 회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노인회 임원 중 C씨 내외가 들어와 욕설을 퍼부으며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A씨는 그 같은 사실 그대로를 아파트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그런 이유로 C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해당 게시물에 C씨에 대한 욕설 한 줄 포함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적시했지만 법원(2심)은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면서 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A씨는 억울해 헌법재판소에 인터넷 상 ‘사실적시’를 한 것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느냐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재는 ‘합헌’을 결정했다.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 A씨를 대리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참여연대 측은 “진실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비방할 목적’이 처벌대상이 아닌 ‘비판할 목적’과의 경계가 모호한 점을 간과한 결정”이라고 유감을 표시했다.

헌법재판소, 정보통신망법 상 진실적시 명예훼손 ‘합헌’ 결정

헌법재판소(소장 박한철)는 지난달 2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정보통신망법) 제70조 1항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들 의견은 7대 2로 나뉘었다.

헌법재판소 입구의 현판(사진=연합뉴스)

‘합헌’을 결정한 재판관(박한철·이정미·이진성·김창종·안창호·서기석·조용호)들은 정보통신망법 상 진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규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비방’이나 ‘목적’이라는 용어는 <정보통신망법>에서만 사용되는 고유한 개념이 아니고,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법령들에서도 사용되는 일반적인 용어”라면서 “일반인들이 그 대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심판대상조항에서 사용되는 의미 또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범위를 넘지 않고 있으므로, ‘비방할 목적’이 불명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비판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판시해 비방할 목적과 공공의 이익에 대한 판단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현재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범죄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면서 “사실에 기초해 왜곡된 의혹제기·편파적 의견 또는 부당한 평가를 적시하는 방법으로 실제로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와 다를 바 없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 폐해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경우에도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명예훼손적인 표현을 규제함으로써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고 판시했다. 그러고는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정보통신망에서의 명예보호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위축효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위헌’ 결정을 내린 재판관(김이수·강일원)들은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과 관련해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스스로 표현행위를 자제하게 되는 위축효과를 야기한다”면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비방할 목적’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비판할 목적’의 구별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라고 소수의견으로 남았다.

참여연대, “비방과 비판 경계 모호한 점 간과” 유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는 2일 논평을 통해 “‘비방할 목적’이 처벌대상이 아닌 ‘비판할 목적’과의 경계가 모호한 점을 간과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비판’과 ‘비방’의 목적이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준이 애매해 일반인들이 ‘어떤 행위가 금지되는지’에 대해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참여연대는 “헌재는 다수의견을 통해, 인터넷의 특성상 순식간에 ‘나쁜 평판’이 퍼져나갈 수 있어 그 피해의 범위를 예측하기 어렵고 이미 유포된 정보의 삭제가 매우 어렵다는 측면 등에서 피해가 더 심각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그렇지만 인터넷은 그만큼 반론을 제기하기에도 수월하며 특히, 우리나라는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에 대응하기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및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따라 명예훼손임을 입증하지 못해도 그 주장만으로도 게시글을 삭제․차단할 수 있는 임시조치제도가 존재함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타인이 듣기 싫은 소리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사생활의 비밀이 아니라면 진실한 사실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부정적인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방할 목적으로 인정하여 표현을 자제시키는 것은 이에 맞지 않다. UN자유권위원회는 작년 11월 대한민국 심사에서 진실적시명예훼손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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