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개진의 한 가지 양식이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현재 국회에서 쟁점 법안 처리 여부를 두고 합법적인 의사 진행 방해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일명 필리버스터로,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장시간 발언으로 국회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진풍경으로 세간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의사 진행 방해 발언에 맞선 찬성 토론이 없다는 점이다. 찬성 토론을 해봤자, 결과적으로 시간을 끌려는 의사 진행 방해 발언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어 치열한 찬성 반대 토론은 가능할 수 없다. 결국 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다수당은 합법적인 필리버스터를 지켜볼 도리 이외에는 없다. 어디까지나 여야가 합의한 ‘룰’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잘 몰라도 일단 정한 필리버스터 관련 조항을 다수당이 지키려는 의지가 아직까지 보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른 한편에서도 어떤 의견 개진을 두고 말들이 많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최성준 방통위원장을 24일 오전 전격적으로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관련 업계가 시끄럽다. 관련 소식을 전한 모 매체의 강조대로 전격적인 만남인 것으로 보인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으레 있어왔던 업계 관계자와의 신년 인사도 마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경쟁사의 경영진은 현재 멀고 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총출동 중이다. 그들이 거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최 위원장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최성준 방통위원장 (연합뉴스)

만남이 문제가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최 위원장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 위원장이 업계 관계자와의 신년 인사도 마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SKT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라는 이슈로 갈등이 첨예한 상황이다. SKT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저지에 사활을 걸었다는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규제기관의 수장을 만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게 대단한 잘못은 아니라고 인정상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회사 경영진이 경쟁사에 맞서 사활을 걸 일은 수도 없이 많고, 그때마다 규제기관 수장과의 단독 면담이 이뤄지는 것을 상상해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일이 다행히도 없었다. 모른 긴 몰라도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최초 사례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되도록 안 만나는 게 좋고 만나더라도 경쟁사 경영진과 함께하는 자리로 한정하는 게 그동안의 관례라면 관례, 룰이라면 룰이었다.

사안이 중대하기 때문이라고 거듭 말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SKT CJ헬로비전 인수합병 건 처리를 끝으로 방통위가 사라지는 게 아니며 사업자에게 중대한 사안은 매일 발생하고 사라진다. 방통위가 ‘하루만 장사하고 끝내겠다’는 게 아니면 가릴 것은 가려야 했고 지킬 것은 지켜야 했다는 얘기다.

방통위는 저마다의 중대 사안을 들고 최 위원장 면담을 신청하는 무수한 사업자들을 돌려 세울 궁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물꼬는 터졌다. 관련 기사에서 방통위의 한 상임위원은 "모든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며 "경쟁사 CEO의 경우 아직 면담 신청을 하지 않아 만나지 않은 것일 뿐"라고 말했다. 또 관련 기사는 ‘면담 신청을 하면 SK텔레콤, KT CEO도 언제든지 만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통신 사업자만 최 위원장 단독 면담이 가능하다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업계 경쟁의 룰을 만들고 지키는 것에 있어서 규제 기관의 역할이 무엇보다 크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고려해 이를 다시 풀어보면 규제기관이 이전투구의 장을 열어젖히는 데 일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또한 크다.

사족 한 가지를 붙이자면 최 위원장과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 동창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연이 단독 면담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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