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이탈리카 스파이웨어 개발업체인 해킹팀으로부터 안드로이드OS 기반 스마트폰 등에 침투해 작동시킬 수 있는 해킹프로그램을 비밀리에 구매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법 사찰’ 파문이 거세지고 있다. 국정원은 삼성전자 갤럭시S 신규모델 출시, V3 같은 백신프로그램에 맞춰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 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기자를 사칭해 민간인을 사찰하려는 공작도 기획했다. 국정원은 “대북·해외 정보전”을 위해 프로그램을 사용했다고 밝혔으나, 프로그램 구매와 교육 그리고 프로젝트가 집중된 시기가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던 2012년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이 전방위로 여론 공작과 사찰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네트워크, 천주교인권위원회,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는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의 감시 목표는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였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국정원은 국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다는 이유에서 해킹팀에 카카오톡 검열 기능을 요청했고, 국내에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그 정확한 기종명을 적시해 보완을 요구했다. 또한 국내에서 널리 쓰이는 모바일 백신을 회피할 방법을 문의하는 등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를 사찰하려는 목적이 뚜렷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만 하고도 감청설비를 구매,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수사기관이다. 2005년 불법감청 사태 이후 국정원은 ‘감청 중단’을 선언했고, 국정원 등 수사기관은 민간사업자들이 감청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춰야 정보전과 수사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펴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새누리당에서 두 차례 감청설비 의무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제스처는 연기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이 국정원은 이미 감청보다 더 강력한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해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기자회견 참여 단체들은 “국정원은 그간 휴대전화 감청을 못하기 때문에 통신사마다 감청설비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사실은 수년에 걸쳐 휴대전화를 해킹하고 카톡을 검열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특별검사 등을 통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국정원은 ‘국외용’이라고 하지만 드러나는 여러 가지 정황은 그게 아니다. 카카오톡에 집중하는 모습, 삼성 핸드폰이 업그레이드돼 출시될 때마다 스파이웨어 업그레이드를 요청한 것, 언론사 기자를 사칭하고, 서울대 공과대 동창회 명단을 활용하려 했다는 점을 볼 때 국내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이어 “국정원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공직선거법,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킹팀과 국정원을 연결한 업체인) 나나테크라는 곳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같은 국내 이동통신사에 설비를 납품하는업체로, 침해가 심대하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진상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국정원 관계자를 검찰에 고민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중 서강대 교수(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이사)는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시기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국정원이 법치주의를 무시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문제는 이번에 국정원이 구입한 것은 단순 감청이 아니라 감청영장의 범위를 넘어서는 해킹이라는 점이다. 이는 어떤 법과 제도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용해서는 안 될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시민의 통신비밀, 프라이버시, 정보인권을 침해한 국정원의 행태에 대해 실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활동가는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하면 감청장비를 보유할 수 있는데, 왜 나나테크라는 민간회사로 우회해 이중삼중으로 어렵고 복잡하게 장비를 들여왔는지 그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며 “(이들 사이에서) 오고간 메일을 보면 국정원도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이어 “정부는 2005년 이후 이동전화 감청이 전혀 없다고 발표하지만 믿을 수 없다”며 “전임 원장이 선거개입으로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국정원이 또 다시 자기 권한을 오남용해 국민을 속이기 위한 모의를 하도록 놔둬야 하는지 모르겠다. 국회와 시민사회가 국정원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확인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국내 사찰용’이라는 게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실정법 위반으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와 청문회는 잘 안 된다. 검찰에 수사를 맡겨도 국정원과 공생관계인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나. 결론은 야당과 시민사회가 추천하는 특별검사가 수사하는 것이다. 불법 대선개입 이후 해체 수준의 전면개혁이 필요했는데 이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중 교수는 국정원을 직속기관으로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진상을 규명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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