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언인 줄 알았다. “힘들다, 버겁다.” 보통 강단진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사석에서도 그런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대부분 ‘파리목숨’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게다가 상대는 모두 한국에서 내놓으라는 재벌 대기업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이야기다. 이 노조는 3년 내내 쉴 틈 없이 싸웠고, 뒤통수도 여러 번 맞았다. 김진억 나눔연대사업국장은 9일 국회에서 열린 ‘희망연대노조 투쟁의 의의와 성과, 그리고 과제’ 토론회에서 “내년까지는 새로운 조직화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희망연대 노조의 주축은 방송통신 노동자다. 그리고 이 노조의 목표는 냉정하게 보면 생존이다. 희망연대노조 조합원 중 절대다수가 간접고용 노동자다. 2015년 3월 현재 씨앤앰 직접고용 337명, 간접고용 494명, 티브로드 간접고용 270명, SK브로드밴드 간접고용 1018명, LG유플러스 간접고용 747명, 다산콜센터 간접고용 280명이 희망연대노조의 조합원이다(최근 결성된 티브로드 정규직 노동조합 제외). 진짜 사장은 항상 뒤로 숨는다. 그래서 이 노조의 승리는 항상 절반뿐이고 미완이다.

노동운동 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운동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희망연대노동조합을 두고 “한국의 모든 노동조합이 본받아야 한다”고 추켜세웠다. 이 노조는 씨앤앰 정규직에서 출발했지만 점점 더 낮은 곳으로 향했고, 지난해에는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이 함께 싸웠다. 사모펀드발 구조조정을 앞둔 상황에서도 정규직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연대해 파업까지 벌였다. 2014년 겨울, 2015년 봄 서울 한복판 전광판 위에서 고공농성을 했고, 아래에서 노숙‧단식농성을 했다.

▲ 김진억 국장(왼쪽)과 이남신 소장 (사진=미디어스)

희망연대노조는 우리 사회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드러냈다. 희망연대노조는 2010년 씨앤앰 직접고용 정규직을 시작으로 씨앤앰 티브로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다산콜센터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등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할 노동자들을 조직했다. 성과도 많다. 원청 사업자를 테이블에 앉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위원장 우원식 의원) 같은 제도 정치권을 견인했다. 서울시는 다산콜의 고용구조를 어떤 방식으로든 바꾸겠다고 나섰다.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도 움직여냈다.

희망연대노조를 처음 만난 건 2012년 11월 다산콜센터지부 사무실이었다. 감정노동이 심할 거라 짐작하곤 했다. 어떤 ‘시민님’은 언어성폭력도 서슴지 않는다는 기사도 여러 번 봤다. 만나보니 상황은 더 열악했다. 상담원들은 하루 평균 103번의 빨간불을 보고, 실적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정보가 뒤처져 정보와 상담이 꼭 필요한 시민들의 전화는 상담사의 월급봉투를 얇게 만든다. ‘건수에 따라 월급도 오른다’는 논리이지만 상담과 공공서비스에는 적절하지 않다. 서울시의 외주화 정책과 전광판 노무관리 탓이다.

2013년 9월에는 티브로드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원청 티브로드가 각 지역센터에 할당하는 지표를 맞추기 위해 자신 돈으로 상품에 가입해야 했고(자뻑), 가입한지 6개월이 안 돼 경쟁사로 떨어져 나간 고객에게 들어간 영업비를 토해내야 했다(환수). 노조는 긴 시간 파업을 했고, 원청을 점거했다. 결국 티브로드는 상생협약을 맺었다. 방송통신업계 모든 사업자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전환해 사용자 책임을 벗어던지려던 흐름에서 일어난 ‘뜻밖의 일’이었다.

▲ (사진=미디어스)

2014년에는 티브로드와 씨앤앰 노동자들이 동시에 싸웠다. 티브로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서, 씨앤앰 노동자들은 최대투자자인 사무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 뒤편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티브로드는 가을을 앞두고 마무리됐지만 씨앤앰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11월부터는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이 이어졌다. 원청 씨앤앰이 결국 테이블에 끌려나왔고, 사태는 12월31일 끝났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하도급업체에서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겨울부터 올봄까지 싸움이 이어졌다. 재계서열 3, 4위 재벌들은 마치 한국경영자총협회를 통해 연합전선을 펼치듯 대응했다. ‘너희가 뚫리면 우리도 뚫린다!’ 업계에는 위기감이 있었다. 두 노동조합의 싸움이 고공농성으로 이어지고 장기화한 배경에는 사업자들의 카르텔과 위기의식이 있다고 보인다.

희망연대노동조합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 이 노조는 재벌 대기업들이 영업실적을 위해 가입자들을 속여 온 사실을 끊임없이 폭로했다. 단체협약에는 “방송의 공공성”과 “가입자 권리 보호”를 위한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이 노조는 출범 초기부터 지역에서 운동을 해왔다. 보수언론이 “하청노조에 원청이 흔들린다”며 선동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희망연대노조의 싸움이 성공적이라는 방증이다.

▲ (사진=미디어스)

그런데 이 노조가 힘들다고 한다. 이 노조는 싸웠다고 하면 최소 반년이고 3년을 내리 싸웠다. 성과도 있었지만 상흔도 있다. 진짜사장과 바지사장이 모두 합심해 조합원들의 생계를 틀어막고, 노조에 균열을 내고 있다. 하루 20~30건에 일에 치여 살던 노동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달라고 하니까 회사는 아예 일감을 뺏어 월급을 줄이고 있다. 그러면서 없애기로 약속한 다단계 하도급을 다시 늘리기도 한다. ‘사장 하면 월 3백만원 밀어줄게.’

올해 자본의 공동전선은 더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희망연대노조는 올해도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그들의 노동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기자들도 다시 이 문제적 노조의 싸움을 들여다 봐야 할 때가 왔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연대하고 후원하고 보도해야 할 1순위가 바로 희망연대노조”라고 말했다. 파업하는데 지역 어린이단체가 지지 기자회견을 해 힘을 주는 이런 노조는 한국에 또 없다.

지독하게 싸웠다. 이남신 소장은 끝내 울어버렸다. 그는 지난해 티브로드, 씨앤앰 싸움에 끝까지 함께 한 이종탁 전 희망연대노동조합 공동위원장 사연을 전했다. 이종탁 전 위원장은 암을 안고도 목을 쥐어짜 “투쟁” 구호를 외쳤고 싸움이 끝나서야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이남신 소장은 “제2, 제3의 이종탁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니까 투쟁이다’ ‘아파도 싸워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더 많은 조합원이 ‘활동가’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고 있다. 건승을 빈다.

▲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왼쪽)과 김승호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사무국장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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