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키스’로 이슈가 됐던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이 결국 방통심의위로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경고’ 제재를 받았다. 이성간 키스였다면 문제조차 되지 않았을 내용이다.

2010년 SBS에서 방송된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동성커플 키스신은 있었다. 다만, 태섭(송창의)과 경수(이상우)도 키스에서 화면은 건물 벽과 태섭의 손만 보여줬다. 그로부터 5년, <선암여고 탐정단>은 처음으로 동성키스 화면을 그대로 노출했다. 성소수자에 관한 인식과 표현이 그만큼 향상됐다고 볼 수도 있는 변화였다. 물론, 방통심의위원들은 “동성애자들은 TV에서 손만 잡으라”며 과거 회귀를 명했다.

<선암여고 탐정단> ‘동성키스’ 심의에 앞서 '문화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동성애 혐오자들은 다수의 민원을 제기하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성소수자인권단체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심의를 하는 것 자체가 동성애 차별”이라며 방통심의위 앞에서 키스 퍼포먼스를 벌였다.

(▷관련기사 : "동성애 찬성 않지만 이해한다, 근데...여고생 키스 이해할 수 없다")

▲ JTBC '선암여고 탐정단' 홈페이지 캡처

‘동성애 TV나오는 게 싫다’고 이야기를 하시지

심의위원들은 “동성애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동성애를 찬성·반대의 문제로 보고, 옳지 않은 가치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속내를 직역하자면, ‘차라리 인권 따윈 잘 모르겠다’, ‘그냥 동성애가 TV에 나오는 게 싫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명백한 '차별'이다. 방통심의위가 '동성애'가 아닌 '키스'를 문제 삼은 것이라면 SBS <상속자들>(권고)과 Ment <몬스타>(의견제시)의 이성 고등학생들 간 키스신와 제재수위에 맞췄어야 형평성이 있다. <상속자들>의 경우 키스신의 농도가 더 진했다. 하지만 이들은 “동성간 키스와 이성간 키스는 다르다”고 주장했고, 그 노골적인 차별이 인권 지향 측면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너무나 인권적인 문제가 된 JTBC <선암여고 탐정단>

시민사회는 납득하기 어렵단 입장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JTBC <선암여고 탐정단> 심의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부당한 제재조치를 결정하고 심의과정에서 동성애를 혐오·차별하는 행위를 했다”며 진정이다.

내용은 명료하다. 방통심의위의 ‘심의’ 자체가 동성애 차별이란 지적다. 방통심의위는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좋은 품성을 지니고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도록 하여야 한다”와 제27조(품위유지) 5항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위반했다며 대놓고“혐오스럽다”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방송법>과 <방송심의규정> 어디에도 동성애 표현을 제재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며 “도리어 <방송법>은 ‘차별금지’를 공정성과 공익성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나아가 방송사에게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에 △방통심의위의 의결사항 취소 및 성소수자 인권침해와 차별행위 중지, △유사 인권침해 또는 차별행위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 △<방송심의규정> 시정 또는 개선 권고, △동성애 혐오발언 성소수자 인권 침해 위원들에 대한 징계 권고, △JTBC 재심청구 시 차별행위 한 위원들 심의에서 배제 등의 조치를 요청했다. 국가인권위는 2010년 방통심의위를 “행정기구로 판단된다”며 “전기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불법정보 등에 대한 심의(통신심의)권 및 시정 요구권을 ‘민간자율심의기구’에 이양하는 내용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 23일 오후 2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의 동성 키스신에 대한 심의를 앞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선암여고 투쟁단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방송 심의의 본래적 의미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이번 파동을 보며 다시, 방통심의위의 본래적 역할이 무엇인지 사회적 재논의가 필요하단 생각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8조(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설치 등)는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방통심의위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에 대해 <방송법>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을 종합하면, 방통심의위는 <방송법>에 근거한 ‘규제 행정 기관’이다.

<방송법>에 근거하지 않은, 심의규정을 넘어서는 '인습'에 의한 심의는 그 자체로 곤란하다. 정부여당 추천 하남신 심의위원은 “우리 사회 인습이 (동성애를)인정은 하되 권장하진 않는다”며 중징계의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헌법이 보장한 '인권'의 가치가 개인이 임의적으로 판단하는 '인습'에 의해 훼손되는 과정이 '행정'이 된다면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혐오'를 조장하는 규제기관의 문제 역시 민주주의의 원칙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다.

<방송법>은 방송에 대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방송은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지역간·세대간·계층간·성별간의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방송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적시한다. “방송은 성별·연령·직업·종교·신념·계층·지역·인종등을 이유로 방송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아름다운 규정도 있다. <방송법>에 반하는 ‘방통심의위’라면 차라리 해체하는게 맞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