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가 정치 풍자 코너를 띄웠다. ‘민상토론’이다. “한 주간의 이슈를 개그맨의 시각으로 더 재밌게 얘기하는 뻔뻔한 이슈토크”다. 급진적인 사회자 박영진은 토론자인 유민상과 김대성에게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 밥 좋아하는 유민상, 재기발랄한 김대성에게 생각이 없을리 없다. 그래도 두 사람은 입장을 말하지 않았다. ‘(복지를)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자 ‘유상급식의 아이콘’이 된 홍준표 지사에 대한 평가는 가짜-침묵으로 충분하다. 그는 지금 누가 뭐래도 지탄의 영순위, 앵그리맘의 주적이다.

문제가 널린 한국이다. 평범한 사람을 투사로 만드는 사회일수록 침묵을 강요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침묵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다들 정치가 피곤하다며 말을 섞기를 피하지만 사실 정치는 늘 피곤했다. 뉴스를 보는 것도 집회에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정치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을 ‘자기검열’하는 시대가 됐다. <개그콘서트>는 이 지점을 찌른 것 같다. 중요한 문제에 이상하리만큼 침묵하는 사람들의 옆구리 말이다. ‘민상토론’ 토론자 두 사람은 다음 번 주제인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에도 침묵할 텐데, 사실 침묵으로도 평가는 충분할 터다.

▲ (이미지=인디다큐페스티벌 2015)

지금 한국사회에는 누구라도 침묵하지 않아야 할 문제가 있다. 세월호가 그렇다. 침묵을 유도하는 사람들은 배상금과 인양비용을 들이밀며 왱왱거렸다. 그러나 “이제 잊자”는 주장은 먹히지 않았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말대로 또 세월호가 아니다. 아직 세월호이기 때문이다. “낡은 배의 개조는 적합했는지, 평형수를 뺐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운항이 가능했는지, 왜 선원들은 승객들을 구하지 않고 먼저 도주했는지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수백 명을 수장시킨 이놈의 사회는 도무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반면 누군가는 말을 참 쉽게 한다. 단식을 ‘쇼’라고 했고, 농성을 ‘갑질’이라고 했던 동물들은 여전하다. 정치인들의 ‘여론 떠보기’도 여전하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2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세월호 인양 여부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 국민 여론을 겸허히 수용해서 결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비용과 인양에 들어갈 비용까지 모두 공개한 뒤 인양 여부를 묻자는 생각이다. 가관이다. ‘진상규명’을 당내 경선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갑자기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실종자 가족과 전문가들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해 선체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1년 동안 도대체 뭘 했는지, 떠 볼 여론이 또 있었는지, 왜 이토록 지극히 합리적인 결론을 그 동안 내리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항상 여론만 쫓아다니는 진짜 바보멍청이라 그런지, ‘다수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무능한 정부라 그런지 답답하기만 하다.

제 역할을 못한 것은 기자들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그렇다.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는 “정말 발로 뛰는 기자라면, 우리가 모르는 걸 하나쯤은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진실을 좇는 기자라면,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아오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진상규명에 관심이라도 보이길 원했어요”라고 했다. 대다수 언론은 ‘눈물’ 뽑아내기에 집중했다. 오늘도 ‘마르지 않는 눈물’ 같은 기사가 포털사이트 대문에 붙어 있다. 추모보다 싸워야 할 게 더 많은데도 사정은 이렇다.

세월호 희생자 고 최윤민양의 언니 윤아씨는 “세월호 참사는 어른들의 밑바닥 같아요”라고 했다. 부끄러움 때문일까. 온도차는 확연하다.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는 세월호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이 절대다수고, 선체를 인양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대의견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왔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잊자고 하는데 잊은 사람은 없다. 새출발을 바라는 사람은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그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언론뿐이다. 펜을 버리고 귀도 입도 닫아버렸다. ‘용인할 수 없는’ 침묵이다.

선거에 바쁜 누군가는 오늘도 밑바닥을 보였다. 세월호 가족들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거리를 행진할 때, 대통령은 무궁화나무를 심었다. 이들은 침묵하는 것만이 아니다. 앞에서는 침묵하고 뒤에서는 가족들과 특별위원회를 흔든다. 희생자를 거하게 추모하며 ‘이제 잊자’는 언론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조용히 눈물 흘리며 국화꽃을 건넬 상황이 아니다.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잡고 함께 침묵하는 침묵을 유도하는 사람들에게 부딪혀야 할 때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에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다. 아직 세월호다. 2015년 4월, 당신의 세월호는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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