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존재하는 프로그램의 소재와 그 소재로 만들어지는 뻔한 형태의 방송프로그램은 상당히 많다. 그 방송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을 프로그램에 심으려 하지만 그 독창적이라는 것이 대부분 코너의 자잘한 변화나 출연자에 국한되곤 한다. 모창이라는 소재로 만든 명절 특집 팔도 모창대회가 그렇고,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여러 요리프로그램 또한 그랬다.

기존에 있던 뻔한 소재와 뻔한 형태를 탈피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jTBC의 능력은 가히 놀랍다. 모창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히든싱어>를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그 능력에 박수를 보내기에 무리가 없었다. 뻔한 소재를 이토록 새로운 예능의 포맷으로 만들어내고, 이를 수출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신뢰는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 식도락의 나라 한국에서 요리 프로그램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장르다. 그러나 그 형태는 대부분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출연진의 차이가 요리프로그램이 지니는 차이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물론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생겨나서 요리 프로그램의 형태가 다양해질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매우 익숙해질 정도로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된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라는 흔한 소재를 가지고 매우 색다른, 그러면서도 아주 즐거운 요리 프로그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즉석에서 재료가 공개된다는 점이다. 그것도 잘 마련된 것이 아닌 누군가의 냉장고에 들어있는 흔한 음식들이 재료가 된다. 모두가 냉장고를 가지고 있기에 내 냉장고에 있는 흔한 식재료가 아주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중은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15분이라는 제한시간과 스타 셰프간의 경쟁이라는 점도 재미를 배가한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덕분에 요리하는 과정의 박진감이 배가되며 동시에 경쟁요소가 들어가면서 요리하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동적인 느낌이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김성주, 정형돈의 호흡도 기가 막히다. 스포츠 중계에 있어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 김성주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요리가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구성 됐기 때문에, 그의 중계가 요리 과정을 더욱 긴박하게 만드는 데 한 몫 단단히 한다. 그의 재치 있는 멘트는 성공적인 스포츠 중계의 모습을 똑 닮아있다.

김성주가 소개하고 중계하는 데 힘을 쏟는다면 정형돈은 웃음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요리를 공격하고 출연자를 공격하며 동시에 저렴하고 자극적인 입맛을 통해 오히려 셰프들의 음식을 폄하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경쟁은 웃음으로 승화되고 셰프만 찬사하는 방송이 아닌 재밌는 예능이 만들어진다. 덕분에 셰프의 모습이 더욱 친근하게 비춰지며 시청자는 셰프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이것이 프로그램을 더욱 재밌게 만드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정형돈이 <무한도전>에서 GD와 정재형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생각하면 정확하다. 정형돈은 자신의 그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김성주와 정형돈의 이러한 역할 분담은 <냉장고를 부탁해>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요리 프로그램이 지니고 있는 재미의 한계는 항상 있었다. 그래서 요리 프로그램은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지니고 있는 한계도 명확했다. 성스러운 키친과 엄한 심사위원들, 격함과 치열함 이런 것들이 요리 서바이벌의 특징이자 한계였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 프로그램이 지니고 있는 이런 한계들을 모두 뛰어넘는다. 요리 프로그램이지만 예능이며, 경쟁이지만 흥겹다. 요리 프로그램의 가장 새로운 형태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독자적인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진다는 것,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그만큼 수많은 제작진이 노력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지상파가 서로를 복제하며 뻔한 프로그램만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는 뻔함을 새로움으로 만들어낸 군계일학임이 틀림없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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