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유통하는 방식이 변하면서 음악의 지위도 변했다. 과거 노래는 노래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러므로 사람들은 노래를 그냥 틀어 놓는 것 이상으로 노래에 집중했고, 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노래의 서사에 감정을 싣곤 했다. 하지만 미니홈피의 시대, 스트리밍의 시대가 오면서 음악은 배경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짧으면서 중독성이 강한 '후크' 음악들이 인기를 끌 수 있었고, 가슴을 울리는 가사와 서사가 있는 노래보다는 후크의 반복으로 인한 중독성 있는 노래들이 사랑받기 시작했다. 'Tell me' 열풍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후크송의 인기는 2000년대 중후반을 뜨겁게 달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행히 이러한 흐름은 서서히 약해졌고, 보컬과 가사가 다시 주목받는 시대가 됐다. '나는 가수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컬이 지닌 힘이 사람들에게 각인됐고, '버스커 버스커'와 같은 팀들로 인해 가사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이런 시간을 거치면서 다행스럽게 대한민국의 음악계는 다양한 음악이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됐다. 이제 음원 순위에는 아이돌이 잘하는 댄스음악부터, 보컬의 역량이 돋보이거나 음악과 가사를 음미할 수 있는 음악이 고루 분포되어 있다. god의 음악과 비스트의 음악, 김동률의 음악, 10cm의 음악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음원 순위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최근의 대중음악은 90년대의 그 풍성했던 시기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여겨지며, 후에 이 시기의 풍성함을 다시 평가할 날이 올 것이다.

서태지가 다시 차트의 상위권에 나타난 것도 큰일이었다. 90년대 문화대통령인 그가 다시 차트의 상위권에 오르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칠 일인데, 그는 한국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새로운 음악을 한국의 음악계에 선물한 것처럼, 그의 최근 앨범 '크리스말로윈'은 '전자음'이 보일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을 드러내며 역시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소개하는 데 일조했다.

서태지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항상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해왔으며 이를 대중에게 어필했다는 점에 있다. 그가 문화대통령이라는 수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음악 외적으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음악이라는 탄탄한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태지의 '크리스말로윈 리믹스' 이벤트는 그런 점에서 더욱 반길만하다. 위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보컬'과 '가사' 그리고 '무대'가 강조된 현재 대중음악계에 '음악' 자체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크리스말로윈'의 음악 소스를 모두 공개했고, 작곡하는 모두에게 이를 리믹스할 수 있도록 했다.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사람은 자신의 리믹스 곡을 실제 음원으로 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작곡가들에게는 큰 기회이며 음악 자체의 중요성과 힘을 드러내는 데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음악의 힘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소스를 공개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음악 스트리밍의 시대에서는 더욱 뜻 깊은 시도이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음악 안에 있는 모든 음을 정확하게 듣기 힘들어졌다. 무손실 음원은 데이터가 많이 필요하므로 압축 포맷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심혈을 기울여 배치한 하나하나의 소리를 청자들이 놓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곡 하나에 담긴 사운드를 세세하게 모두 듣는 것은 이를 위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장치를 구매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아주 멋진 일이다. 서태지의 음원 소스 공개는 이런 상황에서 곡에 담긴 사운드 하나하나를 가장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배려이기도 하며, 이 소리를 듣고 난 이후에 '크리스말로윈'이라는 노래를 다시 한 번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꼭 리믹스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노래 하나를 완전히 즐길 기회를 청취자에게 준 것이다.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손석희가 음악을 드럼만, 베이스만, 기타만 듣는 사람들이 있고, 본인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하자 서태지는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필이 뮤지컬을 12번 보면서 한번은 무대만 봤고, 한번은 조명만 보고 이렇게 12번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름이 돋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서태지는 그런 기회와 경험을 청자와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크리스말로윈 리믹스 콘테스트'는 대중의 관심을 음악으로 이끄는 시도이자 동시에 대중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배려이며,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의 힘을 맘껏 뽐낼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에, 가장 서태지다운 그러면서도 매우 뜻 깊은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blog.naver.com/knightp 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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