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출근하자마자 어김없이 포털 사이트를 연다.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 박스에 ‘최진실 집에서 숨진 채 발견…자살 추정’ 한줄의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오늘 난리도 아니겠다 싶은 생각이 스친다. 스포츠·연예신문, 포털 기사 전문 인터넷신문은 어떻게 다루고 있나 궁금증이 생긴다.역시나 핫이슈였다. 이들 매체는 ‘언론’을 표방하지도 존경받고자 하지도 않는다. ‘대중의 관심으로 먹고 산다’는 업계 환경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설마 하면서 ‘언론’을 자임하고 있는 조·중·동의 닷컴을 들어가 첫 화면을 본다. 가히 충격적이다. 이 사회의 ‘바른 언론’, ‘1등 신문’ 등으로 선전 하는 조·중·동이 스포츠·연예지를 압도했다. 메인 노출 관련기사가 50여개에 이른다. 사망 시각에서 불과 몇시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메인화면의 중요성을 볼 때 포털의 기사 배치는 오히려 점잖다.

▲ 지난 2일 고 최진실씨 사건을 다룬 조선닷컴 첫화면 캡처

▲ 지난 2일 포털 ‘다음’ 첫화면 캡처

지금은 삭제했는지 검색이 되진 않지만 ‘최진실이 사용한 압박붕대는 얼마짜리인가’라는 기사도 있다고 어느 블로거가 경악한다. 압박붕대의 가격을 다루진 않지만, 여느 기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목들만 거들떠 보아도 당시 자살현장이나 빈소의 모습이 생생하다. 생생하다 못해 사슴의 목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동물의 왕국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다.

검찰은 가족들이 원치 않지만 부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이유가 아닌 (미디어에 집중조명을 받아) 사람들의 관심이 많기 때문이란다. 그럼 남겨진 가족과 슬픔에 빠진 지인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 줄 것인지 묻고 싶다. 장사를 하는 데에도 상도의라는 것이 있다. 비록 유명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이렇듯 찢어발기며 달려드는 보도행태는 분명 지양되어야 한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면, 조중동은 또다시 ‘언론’으로써 엄한 얼굴을 하고 ‘좌파 촛불’을 꾸짖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서민들은 좀 더 참고 고생해야 한다고 비장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인터넷판이니까라는 변명은 기껏해야 ‘자위 행위’에 불과하다. 네티즌이 외국인이나 외계인이라도 되나? 인터넷과 지면 독자를 구분지으려 하는 것은 망상이다.

‘독자의 알권리’로 포장해 한 개인에 대한 사생활에 관음 욕구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고인이 된 최진실씨에게 ‘톱스타’란 수식어가 붙는다한들 아무렇게나 다뤄져서는 안 되는 고귀한 생명이다. 그럼에도 톱스타 연예인의 죽음 앞에서는 항상 악순환이 반복된다. 망자의 입장으로 봤을 때 알리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 담긴 시시콜콜한 기사가 대량생산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이면에는 미디어와 연예인 사이에 ‘악어와 악어새’의 이해관계가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예인의 사생활이 미디어에 다뤄지는 정도가 연예인 인기의 지표다. 사람들의 ‘안줏감’이 많이 될수록 연예인은 인기를 얻어 수익이 높아진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다룬 미디어 또한 많은 독자를 확보해 수익을 늘려 간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관계는 제2, 제3의 최진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진실씨가 네티즌의 악플로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유서가 발견된다거나, 고 안재환씨에게 돈을 빌려주어 그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들 단순 호기심이 채워지는 것뿐이다. 죽음을 둘러싼 또다른 시나리오가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망인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자들이 만나서 풀거나 그들이 법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다수 시민들의 직접적인 삶과 무관한 사건을 마치 당신들의 문제라고 느껴지게 과장해 여론을 몰아가서는 안된다.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에 의해 장사를 하더라도 적어도 죽음을 다루는 데 있어 상도의를 지켜라. 사건의 진앙지는 대체로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다. 네티즌 핑계 대지 말고 성숙한 미디어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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